소위 ‘87체제’를 낳은 현행 헌법의 개정 여부는 깊이 있고 광범위한 국민적 토론과 합의가 요구된다.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여당 대표가 흘렸다 주워담는 과정은 정치권의 전형적인 낡은 수법을 연상시킨다. 대통령 부재 중에 해외에서 슬쩍 흘리듯 던져놓고 논란이 일자 언론 핑계를 대며 치고빠지는 식이다. 3김(金) 시대에나 통했을 깜짝쇼다.
김 대표가 제시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란 것도 의원내각제와 별로 다를 게 없다. 대통령이 외교·국방을 맡고 국회에서 뽑힌 총리가 내치를 담당케 해 권력을 분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권력은 대통령보다 국회에 더 집중돼 있지 않은가. 아무나 불러다 호통치고, 무슨 법안이든 의사봉만 두드리면 법이 된다는 무소불위의 국회다. 이런 국회가 입법은 물론 내각까지 구성해 정책을 담당한다는 것은 권력 나눠먹기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번 느닷없는 개헌론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희박한 여당 잠룡들이나 지지율이 바닥인 야권 지도부가 지지하는 모양새다. 허다한 문제와 갈등의 진원지인 국회가 입법에 이어 행정까지 장악한다면 4·19 직후의 정치 혼란상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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