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저녁에 술 대신 車부품·건설 공부 재미에 푹~죽을 때까지 배워야 기업 미래 준비할 수 있죠"

입력 2014-10-21 22:58  

CEO 오피스 - 임기영 한라홀딩스 사장

180도 변신한 CEO
IB만 30년 한 정통 금융맨서 제조업 한라그룹 지주사 대표로

늘 웃으려는 '호빵맨'
IBK직원들이 붙여 준 별명…직원들이 나보고 웃으면 '흐뭇'



[ 정인설 기자 ] 한라그룹 지주사인 한라홀딩스의 임기영 사장은 최고경영자(CEO)를 오랫동안 지낸 영향인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한다. 지난달 3일 그룹 고문으로 있다 지주사 CEO를 맡아 서울 신천동 시그마타워에 첫 출근한 날에도 취임식을 하지 않았다. 관례에 따라 취임식을 열자는 임직원들의 권유에 “하고 싶은 말은 차차 할 수 있는데 취임식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고사했다.

만 42세에 한누리살로먼증권 사장 자리에 오른 이후 증권사 CEO만 네 차례. 그때마다 취임식을 했지만 이번엔 생략했다. 취임식보다 CEO로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다. 금융 전문가인 그에게 제조업을 관장하는 지주사 대표 자리는 생소했다.

주종을 가리지 않았던 애주가가 주량을 줄인 것도 새로운 업무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다. 아홉 차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직원들의 마음을 열곤 했지만 이번에 달랐다. 저녁 회식은 가급적 피하고 점심 식사로 대신한다. “과음하면 몸도 힘들고 공부도 해야 하기 때문”이란 게 임 사장의 설명이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게 지론인 그는 요즘 한라그룹의 주력 산업인 자동차 부품과 건설 관련 공부에 푹 빠져 있다.

국제금융에 해박한 IB전문가

임 사장은 한국 투자은행(IB) 1세대에 속한다. IB라는 용어조차 통용되지 않던 1980년대 초반부터 30년간 IB업무를 맡아 왔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해 국제금융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IB에 첫발을 들여놓은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회상했다. 1982년 장기신용은행(1998년 국민은행으로 합병)에서 일하던 중 한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 뱅커스트러스트은행으로 스카우트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금융KB금융 회장을 지낸 황영기 법무법인 세종 고문도 이곳에서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1998년 삼성증권에서 재회했다. 당시 삼성그룹에 몸담고 있던 황 고문이 한누리살로먼증권 대표로 일하던 임 사장을 끌어들인 것. 임 사장은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에 삼성증권에서 일하면서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국내 최초로 대규모 원화표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일에 관여한 게 보람이 컸다는 것이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해서다.

이후 금융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도이치증권 한국대표와 IBK투자증권 사장을 거쳐 2009년 국내 IB 부문 1위인 KDB대우증권의 수장을 맡았다. 그는 KDB대우증권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IB사업을 국제화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직원 복지도 챙겼다. 일정 기간 무조건 휴가를 가도록 하는 ‘휴가 의무 사용제’도 실시하고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정시에 퇴근해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게 하는 ‘패밀리 데이’도 시행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대로 무엇보다 사람의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리불여인화(地利不如人和)’를 기업 경영에 적용한 것이라고 임 사장은 설명했다.

“한국 금융업이 제조업 보고 반성할 때”

지난달부터 한라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라홀딩스의 CEO로 새 출발하게 된 임 사장의 목표는 뚜렷하다. 한라그룹을 금융과 재무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제조업 중심 그룹이다 보니 재무 쪽에 다소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며 “자본시장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라그룹의 재무구조 선진화를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지주 사장을 맡은 직후에는 금융업 분야의 노하우를 제조업에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제조업을 공부할수록 오히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제조업으로부터 금융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 사장은 “한국의 은행이나 증권사는 덩치만 컸지 글로벌 은행으로 크지 못하고 있는데 완성차 업체나 자동차 부품업체는 몰라보게 발전해 한국 금융업과는 눈높이가 다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에만 머물러 있는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 제조업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 역시 매일매일 반성하면서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부품과 건설업 공부를 하면서 ‘한국 금융업의 문제점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진 양성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금융과 제조업을 동시에 경험해본 사람이 많아지면 금융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최근 들어 금융에서 시작해 다른 분야로 진출한 후배들과 자주 만나는 이유다. 삼성증권 인수합병(M&A) 팀장 출신인 이재호 코웨이 부사장과 우리투자증권 IB담당 상무를 지낸 황인준 네이버 부사장이 임 사장이 아끼는 후배들이다.

영화 좋아하는 호빵맨

7년 넘게 CEO를 하고 있는 만큼 세련된 분위기가 풍길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외모 때문에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호빵맨’이라는 애칭이 그를 따라다닌다. “푸근한 인상과 빨간 볼을 보면 호빵맨이 생각난다”며 IBK투자증권 직원들이 처음 붙여준 별명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정의의 호빵맨처럼 누구보다 먼저 해결해줄 것 같다”는 직원들의 기대가 깔려 있다.

환갑이 넘은 데다 품위를 생각해야 하는 CEO 입장에서 달가운 별명은 아니지만 임 사장은 오히려 좋다고 했다. 직원들이 자신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는데 이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이어 “늘 웃을 수 있는 호빵맨이 되려면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한라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시장에 안착시키는 일을 마무리하려면 인내심과 체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임 사장은 주말에 꼭 한 시간 이상 걷고 주중에도 하루 이상 헬스장을 찾아 운동한다. 정신 건강을 위해선 독서량을 늘리면서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다. 영화와 연극 감상을 하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배창호 영화감독과 구본창 사진작가와 대학을 함께 다니며 영화와 친해졌다.

임 사장은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 듣곤 한다”며 “빠른 노래는 힘들지만 록그룹 부활의 노래는 노래방에서 편하게 부를 정도로 연습한다”고 전했다.

임기영 사장 프로필

△1953년 인천 출생 △제물포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1975년) △조지워싱턴대 MBA 졸업(1980년) △한국장기신용은행 입사(1981년) △뱅커스트러스트 은행(1982년) △살로먼브러더스 증권(1991년) △한누리살로먼증권 공동대표(1995년) △삼성증권 IB사업부장(1998년) △도이치증권 한국대표(2004년) △IBK투자증권 사장(2008년) △KDB대우증권 사장(2009년) △한라홀딩스 사장(2014년)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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