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증시 급등·엔화가치 급락…유럽·미국 증시 상승 이어져
독일 등 日 수출 경쟁국가…통화량 조절 나설 가능성도
수입물가 상승·소비 위축 등 엔低 부작용도 우려
[ 서정환/김은정 기자 ]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가 글로벌 ‘환율 전쟁’에 불을 댕기고 있다. 지난달 31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깜짝’ 추가 양적 완화 발표로 일본 증시는 급등하고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2엔대로 급락했다. ‘구로다 매직’은 일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키우면서 유럽과 미국 증시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급격한 엔저로 국가 간 환율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적 완화로 디플레이션 차단
일본은행은 지난달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시중자금 공급 규모를 연간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는 추가 양적 완화를 결정했다. 구로다 총재 취임 이후 최장인 4시간40분간의 ‘진통’ 끝에 나온 결과물로, 금융정책위원 9명 중 4명이 반대한 가운데 간신히 통과됐다.
이번 추가 양적 완화는 작년 4월 구로다 총재 취임 직후 진행한 대규모 양적 완화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에 발목이 잡히면서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2분기 -7.1%(연율)까지 추락한 일본 GDP 증가율은 3분기에도 1.9% 반등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구로다 총재의 최고 정책 목표인 ‘2015년 소비자물가상승률 2% 달성’이 실현 불가능해 재차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전격적인 추가 양적 완화로 이어졌다. 일본은행은 최근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1.2%, 1.7%로 조정했다. 전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내린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깜짝 조치가 이미 10월 중순부터 검토되기 시작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지난달 10~11일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직후 일본은행 내부에서는 이미 추가 양적 완화 얘기가 나왔지만 구로다 총재는 ‘효과 극대화’를 위해 기존 관점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높아지는 엔저 경계감
지난달 31일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증시는 일제히 2~3%씩 급등했고 다우지수와 S&P지수도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양적 완화 종료를 대신해 엔화 유동성이 증가하고 일본 경기 회복이 세계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다른 나라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JP모간은 엔화 가치가 연말 달러당 115엔까지 떨어지고 내년 3분기에는 120엔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BNP파리바는 내년 3분기 말 121엔, 노무라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은 118엔까지 추가 하락을 점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다른 나라 기업들의 수출채산성을 떨어뜨려 경쟁국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양적 완화에 이어 일본이 또 다른 글로벌 환율전쟁에 불을 붙였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들의 수출단가가 내려갈 경우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에서 경쟁하는 독일과 대만 등도 통화량 조절에 나설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일본 내도 엔저 명암
일본은행은 추가 양적 완화에 대해 “저금리를 유도, 민간소비와 기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상 이유를 달았다.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일본 수출기업들의 수익성이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표적 일본 수출기업인 자동차 업체(3월 결산)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주말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지난해 하반기(2013년 10월~2014년 3월) 평균(달러당 101.64엔)보다 10엔 이상 급락했다. 일본 주요 자동차사의 1엔당 영업이익 영향 분석(니혼게이자이신문)을 기초로 올 하반기 영업이익 증대 효과를 추정한 결과, 현 수준만 유지된다고 해도 도요타는 하반기에만 엔저로 2000억엔의 영업이익이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닛산 650억엔을 비롯해 후지중공업 460억엔, 마쓰다 115억엔 등 주요 6개 자동차사의 양업이익 증대 효과는 3340억엔에 달한다. 히타치 파나소닉 등 전기전자업체도 최근 올 엔화 가치 전망을 내리면서 실적을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엔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개인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나 중소기업은 원자재 가격 부담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7개월 연속 이어진 무역수지 적자도 불안 요인이다. 지난 상반기(4~9월) 무역수지 적자는 5조4271억엔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엔저로 원자재 수입이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스에히로 도루 미즈호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 경기가 여전히 취약한 가운데 양적 완화만으로 성장을 지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김은정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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