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케이크''이화 아이스크림' 등 브랜드 상품화도
20만 동문 힘 결집…24일 '이화인의 밤'이 그 시작
대담=이재창 지식사회부장
[ 김태호 기자 ]
“여대가 위기라고요? 여대는 기회입니다.”
교육부가 지난 8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결과를 발표한 이후 ‘여자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일부 여대가 하위 15% 기준에 걸려 재정지원제한대학이라는 쓴잔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만난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오히려 여대는 기회”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최 총장은 “여대의 특성은 앞으로 더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 총장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 8월 취임 후 두 차례 열린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3개월 동안 바쁜 나날을 보낸 까닭이다. 그는 “1976년 당시 대학 예비고사 성적 기준으로 이화여대는 국내 톱3 대학이었다”며 “‘응답하라 1976’을 외치며 과거 명성을 되찾고, 2020년에는 세계 100위권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 임기 중에 그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임한 지 벌써 석 달이 됐습니다.
“정말 바쁘게 지냈습니다. 앞으로 4년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비전 2020’ 구상입니다. 제가 임기를 마치면 2018년인데 2020년에는 이화여대가 세계 100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응답하라 1976’을 외치며 과거 명성을 되찾겠다고 하셨는데요.
“1976년에 예비고사 성적 순위에서 이화여대가 3위 정도였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대학 평가 기준이 취업률 등 여대에 불리한 정량적 수치에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10위 정도로 떨어졌어요. 하지만 질적 평가에서는 과거보다 더 우수한 평가를 받습니다. 세계 750개 대학 연구의 질을 평가하는 라이덴랭킹은 2013년부터 2년 연속 국내 종합대학 1위를 차지했습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현재 이화여대의 세계 대학 순위는 300위권입니다. 이런 잠재된 역량을 이끌어내 이화여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것입니다. 세계 10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여대의 위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여대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내 대학을 평가하는 요소에는 취업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면서 삶에 대한 성찰, 자기 계발, 사회 기여 등 다양한 것을 통해 꿈을 정하죠. 취업률은 당장에 결과가 나와야 하는 지표라 이런 부분에서 괴리가 있습니다. 대학을 평가하는 지표도 매년 갈팡질팡 합니다. 그러니 대학이 본연의 목표를 좇기보다 평가를 위한 운영을 하게 되죠. 이런 풍토 자체가 저는 대학 전체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현행 대학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까.
“지금의 대학 평가 체계는 남녀공학 위주로 돼 있습니다. 취업률 기준으로 학교를 평가하면 여대가 남녀공학보다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취업률로만 본다면 남녀공학보다는 여대의 취업률이 뒤떨어진다고 할 수 없죠. 이런 세부적인 내용은 대학 평가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학교가 가진 특성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이화여대는 음악대학과 미술대학 모두를 보유하고 있어요. 고려대에는 음악대학이 없고 연세대에는 미술대학이 없죠. 하지만 대학평가 평판도 조사에서 예술계 조사는 없습니다.”
▷현실에 맞는 돌파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으로 일할 당시 국내 교육을 넓게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여대를 더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대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오히려 기회로 만들 생각입니다. 대안은 신산업 융합지식 중심의 학부 개편입니다. 올해 4월 국내에선 최초로 뇌인지과학전공을 개설했습니다. 함께 개설한 화학신소재공학부는 수시 일반전형 모집 경쟁률이 34 대 1이 넘을 만큼 많은 학생이 몰렸어요. 이 분야는 특히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공학 분야입니다.”
▷산학협력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꾸준히 기업 대표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곧 미국으로 출장을 떠날 예정인데 거기에서도 산학협력 유치를 위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입니다. 이미 세계적 화학기업인 솔베이와는 산학협력을 체결했습니다. 공동 연구부터 차후 학생들의 취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외국 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견기업과는 학과와 직접 연계도 고려 중입니다. 추가적으로 올해 후반에는 현장 경험이 많은 산학협력 교수도 채용할 생각입니다.”
▷취업률이 낮은 인문학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인문학 분야에 학생들의 지원이 줄어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래도 저는 인문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최소 정원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지금도 과거보다 인문학 관련 전공 정원이 많이 줄었습니다.”
▷교수들과의 열린토론을 공개한 데는 나름 의지가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 교육을 변화시키는 데 이화여대가 앞장서겠다는 하나의 의지 표현이었어요. 이화여대는 128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체됐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변하려면 내부에서 더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통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
▷이화여대가 중국인 관광객의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고민도 많으시죠.
“저는 중국인 관광객이 소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는 글로벌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학교입니다. 학교를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그 불편함은 이화웰컴센터(방문객 안내센터) 등을 통해 잘 조율할 생각입니다.”
▷이화여대의 특산품도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브랜드 상품화입니다. 식품영양학과는 전통적으로 당근 케이크, 밤만주(일본식 과자) 등 식품 연구를 많이 했어요. 도예과는 도자기 만드는 실력이 좋고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상품화하지 못했죠. 현재 재단과 함께 이화 브랜드를 이용한 상품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이화 케이크’ ‘이화 아이스크림’ 등을 만들면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취임 당시 이화여대 동문 네트워크 재구축도 중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이화여대는 20만명의 동문이 있습니다. 아주 큰 힘이죠. 이런 힘을 모아 재학생과 연결할 수 있는 동문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이화 DNA(dream and achievement)’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래서 동문에게 다시 한번 결집을 호소할 생각입니다. 24일 오후 6시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리는 ‘이화인의 밤’은 그 시작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이화 비전 선포식’도 할 예정입니다. 각계각층의 대표와 동문을 초청해 이화여대가 새롭게 도약할 것임을 선포할 계획입니다.”
최경희 총장은
이공계 출신 첫 이화여대 총장…靑 비서관 거쳐 네트워크 '탄탄'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52)은 이공계 출신 첫 이대 총장이다. 1980년 이후 최연소 총장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구성원과의 소통을 중시해 학내 문제에 관해서는 ‘밤샘 공개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2년간 맡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여수 엑스포 유치 등을 위해 뛰었다. 대외 네트워크가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를 버려야 혁신이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
△ 대구 남산여고 졸업 △이화여대 과학교육학 학사·교육학 석사학위 취득 △미국 템플대 물리학 석사·과학교육학 박사학위 취득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비서관(2006~2008년)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장(2010~2012년) △이화여대 사범대학장(2013~2014년 7월) △제15대 이화여대 총장(2014년 8월~현재)
정리=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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