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독재자’ 설경구, 아버지 우리 아버지

입력 2014-11-04 08:00  


[최송희 기자] 퇴근 길, 아들딸을 위해 통닭을 품에 안고 빗길을 달리는 남자. 아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닭다리가 조금도 아깝지 않은 남자.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그 남자. 그의 모든 모습은 우리의 아버지, 그 자체였다.

최근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 ‘가장 보통의 아버지’를 완성한 배우 설경구와 만남을 가졌다.

영화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무명배우인 성근(설경구)이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극 중 설경구는 소극장에서 8년 간 잡일을 도맡아했던 배우로 “물렁한 성격 탓”에 번번이 배역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왔다. 늘 “행인 1, 2, 3”을 도맡았던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다. 바로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에서 김일성 대역을 맡게 된 것. 그는 허 교수(이병준)와 오계장(윤제문)의 지도 아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김일성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물거품이 되고 김성근은 제대로 무대를 끝마치지 못한 채, 20년이라는 세월을 역할에 빠져 지내게 된다.


‘나의 독재자’는 설경구라는 배우에게도, 그를 지켜보는 관객에게도 독특한 작품이다. 배우의 얼굴을 가장 본연에 가깝게 그려내면서도, 그의 얼굴에 가장 많은 작업을 거친 작품이기도 한 까닭이다.

“특수분장을 할 때 가장 염두 했던 것은 ‘설경구가 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김일성이 아닌 성근이 나이 먹은 모습을 찾기 위해서 점차 각을 다시 조정해나갔죠. 영화에서 원하는 건 김일성의 모습이 아니니까요. 살을 없애 보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면서 분장 테스트를 했어요. 여러 의견들을 맞춰가면서 찍은 게 스크린 속 그 모습이에요. 일부러 김일성과 비슷해 보이는 걸 피하기도 했어요.”

그는 말을 마친 뒤, 갑작스레 관계자들에게 핸드폰의 행방을 묻는다. 사진첩 속 김성근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이게 처음 모습이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세세하게 보여준 다음에야 씩 웃는다. “이렇게는 늙지 말아야지. 배 나오고 말이야.” 농담까지 곁들이면서.

열 달이나 걸렸다. “비워둬야 할 것 같은” 영화였기 때문에 ‘소원’ 촬영 후 열 달 정도의 시간을 비워둔 채 차근차근 김성근을 완성해나갔다. 평양 출신 강사에게 북한 말을 배우고, 김일성 선전 영화를 보며 그의 제스쳐를 익혔다. 체중 증량을 위해 짜장면을 욱여넣으면서 다섯 시간에 걸친 특수분장도 감내했다.

예민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 그는 “박해일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감독도 모르는 부분을 오직 박해일만이 안다”고 말했다. ‘은교’로 특수분장을 경험했던 박해일은 누구보다 설경구의 고통을 이해했고, 그가 조금 더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상대역이 박해일이었다는 게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해요. 모두 말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특수분장에 대한 고통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요.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거죠.”

설경구가 가진 박해일에 대한 애정은 태식(박해일)을 바라보는 김성근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상대 배우에 대한 믿음도 그렇거니와 자신을 배려해준 박해일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까지도 되새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박해일이 아들 역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어요. 뭐랄까. 해일이에게는 애 같은 면이 있어요. 철이 없다는 건 아닌데, 천진난만하다고 해야 할까요. 깊이 생각하는 면도 있으면서 엉뚱하고. 똘끼 있는 얼굴이 있기도 하고요.”


아버지이자 아들인 그는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쑥스러워서 못 보”면서도 태식의 오열 신을 두고 “아들의 입장”이 되었다. 대다수의 관객들이 함께 느꼈을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북받치는 설움이 잘 드러난 신이었다.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등 돌리고 살고 있더라도 짠하죠. 제 또래들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들 비슷할 거예요. 데면데면하고 표현도 잘 못하고, 어떻게 풀어야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버지처럼 외로웠던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김성근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세대의 인물이니까. 그 사회 흐름의 아버지는 결국 자식들에게 갉아 먹힌 사람들이잖아요. 크고 보니 아버지가 왜 이렇게 쪼그라들었는지. 도리어 화가 나기도 해요.”

설경구 역시 한 가정의 아버지. 그는 감정의 동요가 가장 컸던 장면으로 “CCTV 신, 마지막 공연은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모든 걸 한 방에 보여줘야 했어요. 아들과의 소통이 드러나는 장면이니까요. 거기다가 1막에 해결되지 않았던 감정을, CCTV 신을 통해 해소해야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모든 게 다 무너질 것 같았어요. ‘겨우 이걸 하려고 그랬던 거야?’ 싶은. 그게 무슨 허무함이에요. 정말 예민의 극치를 달렸었죠.”

극 중 허 교수(이병준)은 성근에게 “배우를 잡아먹는 역할”에 대해 언질 한다. 조금 더 완벽에 가까워지고 싶었고 끝내 김성근을 갉아먹고 만 것이다. 하지만 달리 돌아보자면 김성근은 ‘김일성 역에 미친’ 노인이 아닌 미처 끝내지 못했던 역할을 뒤늦게나마 매듭지은 배우라고 볼 수 있다.

설경구 역시 “저도 김성근은 계속 진행형이었다고 생각했다”면서 “아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아픔이 있는 아버지”라고 김성근을 설명했다.

“오계장(윤제문)이 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도, 김성근은 담담한 모습이잖아요. 그러면서 김성근의  공연, 진짜 공연을 펼치죠. 아들을 위한 마지막 연극인 ‘리어왕’까지요.”

그렇다면 배우 김성근이 아닌, 배우 설경구에게도 ‘배우를 잡아먹은 역할’이 있을까? 그는 “박하사탕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아니었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앞으로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인생 최고의 작품”이면서도 “20년이 넘었어도 그 때 느낌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고민일 수밖에 없는 배우. “너무 못하는 것 같아서 감독에게 사과”까지 했던 그 작품은 아직까지도 가장 보기 힘든 작품이었다.

“그래서 못 빠져나왔다고 착각했던 거죠. 그냥 배역이 오래 쫓아온 거지, 못 나온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상을 살면서도 순간순간 올라올 땐 있지만요. 착각하고 살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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