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기자/ 사진 장문선 기자] “열정을 다 바쳐 작업했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레드카펫’이 더 잘됐으면 좋겠다. 성공의 끝은 잘 되는 게 아니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
보통 인터뷰 준비는 그 사람에 대한 발자취를 더듬는 것으로 시작된다. 윤계상이 스크린에 첫 발을 들이민 2004년부터 주연을 맡은 최근작 ‘레드카펫’(감독 박범수)까지 10년 세월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 봤더니 스크린 속 윤계상은 거친 야생마 같았다.
사회성 짙은, 어두운 영화를 다작한 그는 영화판에서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흥행도 면에서도 그렇고. 강렬한 캐릭터는 자칫 잘못하면 배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늪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윤계상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발레 교습소’(2004)에서 윤계상은 우울한 열아홉 청춘을 보냈고 ‘6년째 연애중’(2008)에서는 오랜 연애에 지친 찌질한 남자친구를 연기했다. ‘비스티보이즈’(2008)를 통해 청담동 밤 세계 최고의 에이스로 변신하는가 하면 ‘집행자’(2009)에서는 사형집행으로 내적 갈등을 겪는 신입 교도관으로 분했다. 그리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작품 ‘풍산개’(2011)까지 영화 필모그래피로만 보자면 그는 늘 어두운 인물이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상업영화로 레드카펫을 밟아보는 것이 꿈인 10년 차 에로영화 감독 박정우(윤계상)로 분했다. 박범수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출연한 이유와 줄곧 걸어온 노선과는 다른 작품 선택 이유가 궁금했다.
“‘레드카펫’은 영화 ‘소수의견’을 찍을 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스스로 액션에 강한 배우라 생각했고, 겉으로 표현하는 연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대사도 많고 감정적인 걸 많이 드러내야 하는 작품을 마주하고 나니 들통 날 것 같더라. 내 연기의 깊이가. 현장에서 이경영 선배님, 유해진 선배의 연기 앙상블을 보고 그저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타이틀은 큰 욕심이었단 걸 깨달았다. 마음을 쫙 내려놓기로 한 타이밍에 ‘레드카펫’이 찾아왔다”
지난 10년을 “숨 넘어 가는 줄 알았다”고 회상하기도한 윤계상은 “가수출신이라 더 많은 고민을 안고 연기를 시작했다. 애를 쓰면 쓸수록 피폐해지더라. 영화에서도 이야기 하지 않나. ‘에로감독이 어때서?’라고. 박감독도 그랬고,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욕심을 내려놓고 선택한 ‘레드카펫’이 의외의 깨달음을 안겨줬다. 행복의 끝은 잘 되는 게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게 중요한 거라는 걸. 그리고 god를 다시 안게 돼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그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지론은 이렇다. “자아가 많아야 한다”는 것. 이는 그간 배우 윤계상만 고집했던 과거에 대한 후회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부모님의, 친구들의, god의, 배우로서의 윤계상이 되어야 한다. 한 우물만 파니 한계가 보이더라. 결국 자아가 많은 사람일수록 실패했을 때 빨리 일어설 수 있겠더라”
그런 의미에서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야? 배우로 살아가고 싶었던 거야?”라고 묻는 정우의 대사는 지난 10년 동안 축척한 세월의 아픔을 후벼 파는 지점이었고, 행복을 바랐던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궁극적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이야기인줄 알았다.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과거의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배우로 살아가고 싶은 거다. 배우가 되고파 열정을 발산하며 영화에 매진하면서도 그 에너지의 쓰임이 상처 같았다. 소진을 해도 채워지지가 않으니까. 정우의 성장이야기인 ‘레드카펫’은 나의 성장을 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더 이 영화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에로영화 감독의 첫 상업영화, 19금 코드가 앞세워 홍보된 터라 작품이 베일을 벗기까지 배우 스스로도 걱정과 아쉬움을 떠안았을 테다. “영화를 본 지인들이 ‘네 이야기 아니냐’고 말 하더라. 내용에 대한 진정성을 믿고 간 부분이 있었으니까 자신이 있었다”
윤계상은 지은수(고준희)를 향해 “널 내 인생에 캐스팅하고 싶어”라는 메시지를 영화 말미에 던진다. 이끌리듯 자신의 인생에 박정우를 캐스팅한 윤계상은 이 기회를 빌려 지난 나날의 정체기를 덤덤히 훑어내면서 변화하는 오늘을 진심 어리게 고백했다. 상처를 치유하려거든 그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했다. 스스로 힘을 빼고 나니 비로소 진짜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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