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뜬금없이 "사퇴", 뜬금없이 "복귀"...김태호의 득실은?

입력 2014-11-05 14:33  


(은정진 정치부 기자) 여권의 차기 대권 잠룡군으로 꼽히는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체면을 구겼습니다. 지난달 23일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하겠다며 이른바 최고위에서 ‘깜짝가출’을 선언했다가 13일만에 번복하며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온 겁니다.

김 최고위원이 돌연 사퇴를 선언하자 정치권 일각에선 그가 강한 ‘정치적 승부수’를 건 것이라고 심각하게 평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정치권은 그의 사퇴발언이 담긴 정치적 함의를 계산하는데 분주했습니다. 일각에선 당을 안정시키기 위해 전국위원회를 열어 시급히 새 최고위원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 발 앞선 말까지 나돌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의 사퇴 이유는 단순해 보였습니다. 그는 최고위원에 선출된 이후 홀로 꾸준히 개헌 필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의 발언은 좀처럼 힘이 실리지 않았고 되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상하이발 개헌 발언이 정치권에 후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이러다 정국 주도권을 김 대표에게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느꼈을 터입니다.

개헌을 외쳤던 그가 정치적 존재감을 잃어가자 오히려 자신의 개헌론에 불씨를 당겨줬던 김 대표에 힘을 실어주지 않은 채 사퇴해 존재감을 되찾겠다는 겁니다.

김 최고위원은 사퇴 이유로 “현안으로 밀려 있는 경제활성화를 쿨하게 통과시키는 것이 전제돼야 개헌도 가능하다”고 말했는데요. 일부에선 경제활성화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까지 제기했습니다. 이렇게 김 최고위원은 사퇴선언 한 방으로 정국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김 최고위원의 정치적 득실은 마이너스로 향하는데요. 사퇴 다음날인 24일 갑자기 “당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 볼 여지가 생겼다고 생각한다”며 “시간을 두고 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는 등 전날 절대 번복은 없다고 했던 강한 의지가 다소 꺾이는 듯 했습니다.

25일이 되자 김 최고위원의 사퇴 의지는 더욱 약해졌습니다. 김 대표와 김 최고위원이 이장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의 부친상이 치러지던 상가집에서 만나 돌연 술잔을 기울였는데요. 김 대표가 “막나가지 마라”고 하자 김 최고위원은 “잘 알겠습니다. 형님이 잘 돼야 당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고”라며 화답했습니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사퇴 번복 낌새를 느꼈습니다.

27일 국회에서 만난 김 대표는 “(김 최고위원 철회 여부는) 아직 진전중이다”라며 김 최고위원의 철회 여지를 남겼습니다. 여기에 초/재선 의원들까지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김 최고위원을 찾아가 옆구리를 찌르자 김 최고위원은 결국 “주말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한발짝 물러났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김 최고위원의 사퇴가 김 대표의 개헌 발언으로 인한 비박(비 박근혜)계의 혼란과 친박계의 재부상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여권내 후폭풍’을 예상하기보단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거란 예측이 파다해졌습니다. 이후 그는 “계속해 고민만 깊어지고 있다”고 말한 뒤 정치권에서 두문불출했습니다. 사퇴 후 독자행보보단 번복을 위한 명분을 찾는 듯이 갈팡질팡하는 김 최고위원의 모습에 정치권도 서서히 관심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30일 본회의가 끝난 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최고위원은 “(후배 의원들이) 좀 들어와서 변화와 혁신에 힘을 보태라, 안에서 싸우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여야 대표들의 경제에 대한 의지가 강한 걸로 확인되고 있다, 소위 사퇴 철회 여부에 대해 좀더 깊이 해볼 수 있다”며 번복을 위한 출구 전략을 찾는 모습이었는데요.

결국 김 최고위원은 3일 오후 “복귀해서 더 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그런 만장일치의 요구가 있어 내일까지 입장정리를 하겠다”고 하며 사실상 복귀 의사를 밝혔습니다.

미적거리는 태도 만큼이나 복귀과정 역시 깔끔하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3일 저녁 김 최고위원은 복귀를 암시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하겠다며 회견 시간을 문자로 공지했습니다. 여기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미리 기자회견문을 돌린 건데요. 4일 기자회견을 하겠다면서 복귀 기자회견문은 전날 미리 보낸 겁니다. 회견문을 지금 보도하란 뜻인지 내일 하라는 건지 기자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기자가 직접 의원실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시점이 언제인지를 묻고 나서야 김 최고위원측은 기자들에게 ‘4일 기자회견 후 보도’라는 엠바고 요청 문자를 급히 돌렸습니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 김 최고위원 복귀를 속보로 보도한 뒤였습니다.

정작 4일 열린 복귀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이상하리 만큼 썰렁했습니다. 일부 동료 의원들은 “명분도 없이 돌아오는 걸 보면 통 큰 정치인은 아니다, 초짜 정치다”라며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뜬금없는 사퇴 발언에 뜬금없는 복귀까지, 해프닝으로 시작해 해프닝으로 마무리한 김 최고위원의 엉성했던 태도 탓에 그의 정치적 입지는 13일 전보다 한참 후퇴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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