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4] "끊임없는 시도가 창의력으로 이어져…꼭 해내겠다는 의지가 중요"

입력 2014-11-05 21:09   수정 2014-11-06 04:14

김용 세계銀 총재-강성모 KAIST 총장 대담

"한국식 타이거맘 왜 나쁜가…IQ 못 바꿔도 투지는 바꿀 수 있어"



[ 허란 / 이현진 기자 ]
金 “안정적 상황에선 창의력 개발 못해…만점자보다 관리능력 뛰어난 학생 뽑아”

“자녀 원하는 것 하게 하라”…한국사회엔 맞지 않을 수도
사회가 다양성부터 인정을
가수 ‘싸이’같은 아이들이 문제아란 말 듣지 않게 해야

“한국인의 창의력은 빌 게이츠도 인정했다. 창의력이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서 노력하는 의지와도 같기 때문이다.”

5일 ‘글로벌 인재포럼 2014’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 최고경영자(CEO)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한국인의 의지력을 높이 평가했다. 빌 게이츠가 김 총재와의 저녁 자리에서 “한국인들은 성실하게 일해서 무언가를 더 낫게 만들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합쳐서 상품으로 만드는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한국은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김 총재는 이날 강성모 KAIST 총장과의 대담 형식으로 이뤄진 기조연설에서 “지독하다 하리 만큼 무언가 해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며 “한국의 교육제도는 이런 투지를 길러주는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처럼 끊임없는 시도가 창의력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열이 대단한 ‘호랑이 엄마’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자녀가 어려움 없이 편안하기만 하면 열심히 안 할 수도 있게 된다”며 “그러면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총재는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미국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이런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되돌아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제안받았을 때마다 그저 뛰어들었다. 원래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비정부기구(NGO)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힘이 있어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게이츠재단으로부터 4500만달러 자금을 따냈고, WHO에서 에이즈 담당 국장으로 일했고, 다트머스대 총장에 이어 세계은행 총재에까지 오게 됐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라는 점이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못 할까’ 같은 생각은 하지 마라. 뭐가 되고 싶다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기회가 생긴다.”

▶세계은행 총재로서 현재 가장 중요한 현안은.

“에볼라 바이러스 위기다. 그동안 결핵, 에이즈 치료 관련 일을 해봤는데 에볼라가 가장 심하다. 이는 아프리카 3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타격을 주기 때문에 초기부터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대처가 너무 늦었다. 1년 전 처음 발병했을 때 조기 대처만 했다면 오늘날 같지는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금융수단을 통해 일종의 보험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선진국이 기금을 마련해 추후에 세계적인 협조를 필요로 하는 질환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해당 국가로 인력을 파견해 질환을 통제하는 노력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교육 선도자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내년 5월엔 세계교육포럼이 한국에서 열린다.

“14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종종 ‘공부 안 하면 한국에 보내버린다’고 이야기 한다. 한국 교육의 엄격한 맛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한국 교육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한국 학생들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점수는 상당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실시한 창의력 테스트에서도 1위를 달성했다. 한국 교육체계의 결과는 매우 탁월한 반면 심리적인 비용은 상당히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좁다. 가수 싸이와 저녁을 함께 먹을 기회가 있었다. 싸이는 한국 교육제도 내에서 실패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만나 보니 너무 똑똑했다. 다만 한국 교육제도 내에서 전통적으로 가치 있게 평가하는 ‘똑똑함’이 아니었던 것뿐이다.”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암기식 교육이 단점은 아닌 것 같다. 의대 1학년 때 외울 게 너무 많다고 하는데, 3학년이 돼 직접 병동을 돌면 외울 게 더 많아진다. 머리에 아무것도 없다면 창의력을 발휘하기 너무 어렵다. 머리에 뭔가 더 많으면 창의력을 발휘할 재료가 많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집중적으로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가수 싸이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수학·과학에서 1등은 못 했지만 춤출 때와 노래할 때는 잘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지능지수(IQ)는 못 바꾸지만 투지는 바꿀 수 있다. 한국 교육제도는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투지를 키운다.”

▶한국 교육이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독일은 고등학생의 40%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진 직업학교로 간다. 스위스는 25%가 대학에 가고 나머지는 국가가 일부 지원하는 견습제도에 참여한다. 이런 교육제도는 시장과 잘 맞춰져 있다. 반면 한국은 고등학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 때문에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일자리와 미스매치가 나타난다. 고등학생의 80%가 대학에 간다는 건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분명히 수정돼야 한다. 4년 내내 등록금 내고 대학을 다녔는 데 졸업한 뒤 적절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면 학생들은 굉장히 어려워할 것이다.”

▶글로벌 대학들이 학생 선발시 고민하는 점은 무엇인가.

“내가 총장으로 있던 다트머스대는 학생을 선발할 때 단순히 점수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만점자를 탈락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흥미로운 학생을 찾는다. 대부분 유수 대학은 점수가 완벽한 학생을 원하는 게 아니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자기관리 능력이나 창의력을 보이는 학생을 찾는다. 다트머스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훌륭한 교수를 초빙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로부터도 긍정적인 도전의식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교수에게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게 크다.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한다. 미국 대학들이 굉장히 흥미로워지는 이유도 바로 다양성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연아 선수, 가수 싸이 등 한국은 탁월한 인재를 배출했다. 이들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나.

“빌 게이츠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우리는 똑똑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자신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어려움을 뚫고 결과를 낸 덕분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게이츠는 한국 사람에 대해 성실하게 일을 해서 뭔가 개선을 하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합쳐서 판매하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사실 이런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독하다는 표현을 쓸 수도 있는데, 뭔가 해내겠다는 의지가 탁월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한국 교육제도가 이런 인재를 배출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줬다고 보는가.

“한국엔 탁월한 개인이 많다. 한국 교육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 말도 있듯이 계속해서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이것이 창의력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게이츠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다시 일어서서 노력하는 것을 창의력의 근원이라고 평가한다. 부모는 자식의 이를 날카롭게 갈아주는 돌이라는 말을 어머니는 종종 했다. 우리 부부도 호랑이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한다. 자녀가 어려움이 없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열심히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없다.”

▶호랑이 부모에 대해 말했는데, 자녀 교육에 고민이 많은 한국 부모들에게 조언한다면.

“호랑이 엄마들이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운다는 논쟁도 있다. 과도한 교육열 문제도 많이 제기되지만 한국 문화권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평가하기는 어렵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하게 하라’는 건 한국 사회구조에 맞는 접근법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은 사회적인 구조와 체계 변화부터 꾀해야 한다. 싸이 같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문제아라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예술적지수(AQ)를 배양하며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성을 끌어안고 어떤 부문에 재능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뛰어난 리더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배출될 것이라고 본다. 미래의 줄리아드 음대가 한국에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허란/이현진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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