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前 국내에 '현대적 금융' 첫 도입…서울시 '금고지기'

입력 2014-11-07 07:00  

한국 대표 장수기업

대한천일은행이 전신
대한제국 황실 자금으로 설립
일제시대 민족저항 운동 기여도

외환위기 등 시련 속 저력 발휘
기업금융 주도…산업화 '한몫'
매각 앞두고도 영업력 그대로



[ 박신영 기자 ] 우리은행은 115년이나 된 은행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으로 꼽힌다. 1899년 1월30일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대한제국의 황실 자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하고 관료와 조선상인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대한제국 하늘 아래 첫째 가는 은행’이라는 뜻을 담았다. 1910년 ‘조선상업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훗날 상업은행으로 발전했다. 한일은행과 1999년 합병되면서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02년부터 우리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 중이다.


100여년 전 한국에 ‘금융’의 개념을 도입

대한천일은행의 창립이념은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이다. ‘돈을 원활하게 융통하는 것이 국가발전의 근본’이란 의미다. 대한제국 당시에 이미 금융의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출발한 것이다.

은행 운영은 전통상인들이 중심이 됐다. 민족금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정부 관료들도 참여했다. 대한천일은행 초대 은행장이던 민병석은 탁지부대신, 궁내부대신을 지낸 인물이었다. 1902년 제2대 은행장으로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취임했다. 일제에 저항해 휴업을 단행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앞장섰다. 1907년부터 일본에 진 나랏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대한천일은행은 이 운동으로 모은 자금을 맡았다. 독립운동 관련 자금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고난으로 이어졌다. 1910년 조선총독부는 ‘대한천일은행’이라는 명칭을 ‘조선상업은행’으로 강제로 변경시켰다. 일제 항거의 중심에 선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19년 3·1운동 때는 대한천일은행 본점 앞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우리은행의 또 다른 줄기는 ‘한일은행’이다. 한일은행의 전신은 ‘조선신탁주식회사’와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다. 이들은 이후 한국 금융의 큰 축을 담당했다. 1932년 설립된 조선신탁은 부동산, 유가증권, 금전 신탁자금 운용전문 금융회사로 기업 금융을 담당했다. 1936년 설립된 조선중앙무진주식회사는 서민 금융 또는 소기업 금융을 주로 담당했다. 두 회사는 광복 후 ‘한국흥업은행’으로 하나가 됐고, 1960년 ‘한일은행’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기업과 경제 발전의 주역

일제시대 이후에도 위기는 있었다. 6·25전쟁으로 우리은행은 북한지역에 있던 50개 영업점(상업은행 27개, 신탁은행 8개, 상공은행 15개)을 잃었다. 하지만 전후 1950년대의 경제재건과정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1956년 3월3일엔 증권거래소가 개설되면서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같은 날 증시에 입성, 나란히 ‘상장 1호’가 됐다.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의 주거래은행으로 자금 조달을 지원하며, 산업화의 한 축을 맡았다.

이 같은 기업금융 강자로서의 면모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1997년 초 한보철강을 시발로 대기업의 부도가 이어지고, 그해 11월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때 주요 기업들과 함께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할을 담당했던 우리은행은 기업들의 줄도산으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로 경영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1998년 대동은행을 비롯한 5개 은행 퇴출을 시작으로 1999년 1월 금융구조조정 추진과정에서 상업·한일 두 대형 은행은 나란히 공적자금을 받은 뒤 합병을 통해 한빛은행으로 새 출발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403개 점포 통폐합하고 직원 5569명을 감축하는 등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시련을 겪었지만 우리은행은 다시 일어섰다. 2001년 평화은행을 흡수 합병하고, 2001년 최초의 금융지주사인 우리금융그룹 자회사에 편입, 2002년 5월 우리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했다. 또 신용리스크 관리 시스템, 성과급제 등을 도입하고, 전산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는 등 혁신을 시도했다. 이에 따라 합병과 구조조정 후 처음으로 2001년 당기순이익 7129억원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 상반기에는 시중은행들의 치열한 도전을 이겨내고 ‘서울시 금고은행’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냈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민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도 영업력이 흔들리지 않는 데서 우리은행의 저력이 잘 확인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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