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업가정신인가] 車 튜닝업체 "머플러 인증비만 수천만원…사업하겠나"

입력 2014-11-14 18:06  

<1부> 기업가정신과 그 적들 (2) 기업 발목잡는 3류 관료, 4류 정치

산업용 폐수가 먹는 물보다 100배 깨끗해야 한다는 규제에 얽매인 수질법
입는PC·전기자전거 등 인증절차 복잡해…시장 주도권 빼앗기기도




경기 이천시에 있는 A사는 연간 수십억원을 수질 관리에 쓴다. 4대강 주변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업용 폐수라도 국민이 먹는 물보다 100배 깨끗이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수질법’과 ‘먹는 물 관리법’ 등에 따르면 먹는 물에는 구리를 비롯한 특정 물질이 L당 1㎎ 이하까지 허용되지만 4대강 유역 산업용 폐수에는 그 함유량이 L당 0.01㎎ 이하로 제한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말 이런 과도한 규제를 줄이기 위해 “규제 총량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작년 7월엔 “규정에 정해진 것 외에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해도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기업인은 많지 않다. 명분만 앞세우는 사전 혹은 사후 규제로 시장에 개입해온 공무원의 관행이 개선될리 만무하다고 생각해서다. 이 같은 정치권과 공무원들의 규제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선 쪼그라든 기업가정신이 꽃피우기 어렵다는 게 재계의 반응이다.

자동차 튜닝시장에서 밀려난 한국

독버섯처럼 퍼져 있는 과도한 규제 그물망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질법이 대표적이다. 환경부는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1990년 처음으로 수질법에 산업용 폐수 규정을 만든 뒤 적용 범위를 확대해왔다.

1997년 기존 4대강에 임진강을 적용 구역으로 추가했고, 2004년엔 섬진강까지 넣었다. 현재 이 법을 적용받는 지역 면적은 1만3102㎢로 국토의 13%에 해당한다. 2010년엔 0.1㎎을 넘으면 안 되는 물질 종류도 19종에서 25종으로 늘렸다.

자동차 튜닝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자동차 튜닝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인 데 비해 한국 튜닝시장 연매출은 5000억원에 불과하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선 5위인 한국이 튜닝시장에선 0.5%의 점유율로 존재감도 없다.

국회는 걸음마 단계인 자동차 튜닝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달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엉뚱하게 부품 인증제라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었다. 그동안 소비자가 튜닝 제품을 장착한 뒤 교통안전공단에서 사후 심사를 받았지만 앞으로는 제조사가 국토교통부령이 정한 기관에서 성능과 품질을 인증받은 튜닝 부품만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되면 제조사가 자기인증을 거친 뒤 판매하는 일반 자동차 부품과 달리 튜닝 부품은 외부 기관으로부터 별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가장 간단한 튜닝 부품에 속하는 머플러(차량 소음을 줄여주는 장치)만 하더라도 매번 부식, 열·충격, 압력, 소음 등 10여차례의 시험이 필요하다.

한 튜닝업체 사장은 “시험기관 인증을 받으면 10만원짜리 머플러를 만드는 데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어 인건비도 못 건지는데 어떻게 사업을 하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은 규제 대상’ 인식이 문제

조세특례제한법도 새로운 기업이 탄생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을 비롯한 3개 기관에서 인증받은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만 소득공제 혜택을 주다 보니 벤처인증을 받지 못한 신생회사는 투자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유인이 없자 엔젤투자액은 2000년 5493억원에서 2011년 296억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

프랜차이즈 산업은 골목상권 규제로 주춤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범거래 기준 때문에 대기업 계열 빵집은 반경 500m 이내에 같은 브랜드의 신규 가맹점을 낼 수 없게 됐다. 커피업계는 2012년 11월부터 공정위의 500m 거리 제한 규제를 받고 있다.

비현실적인 규제로 각종 융합산업의 성장 엔진도 꺼지고 있다. ‘입는 PC’로 불리는 웨어러블(wearable) 기기는 법적 기준과 분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기준과 품질보증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와 건설기계가 결합한 트럭지게차, 전기제품과 결합한 전기자전거, 진동 파운데이션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돌침대 산업 역시 이중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돌침대는 명확한 제품군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가구와 전자제품 인증을 모두 받아야 한다. 각기 다른 시험기관에서 시험을 받는 데만 제품당 1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정치권 싸움의 불똥도 산업계로 튀고 있다. 여야 간 극심한 대립 속에 15개 경제활성화 법안 중 관광진흥법 등 5개가 지난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월마트 직원은 220만명인데 우리나라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 3334곳의 종업원 총수는 260만명에 불과하다”며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더 많이 만드는 정책 대신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만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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