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배당 확대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할 전망이어서 연기금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연기금의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 제약 요인을 해소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국민연금도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받는 이유는 낮은 배당 수준에 있다며 배당 확대를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 한국 주식 저평가, 낮은 배당 수준 때문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국민연금과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민연금의 배당기준 수립방안' 이라는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고 국내 기업의 낮은 배당을 적정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준과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기업들의 성장 둔화로 자금 수요가 줄어들면서 내부 유보금을 쌓을 필요성이 낮아졌다"며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배당정책을 세우고 주주이익환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된 이유는 현저히 낮은 기업들의배당 성향 때문"이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배당 성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 배당성향은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17.5% 수준에 불과하다"며 "이는 국내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입금이 빠르게 증가하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남 연구원은 또 "연기금은 회사와 협상을 통한 주주관여 활동으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도 "이것이 성공적이지 않을 경우 배당을 강제로 늘릴 수 있는 후속 조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종목은 277개에 달한다. 이들 종목의 최근 3년간 배당수익률을 보면 시장의 낮은 배당 수준과 일맥상통한다. 277개 기업 중 배당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이 37개사(13.4%), 배당수익률 0% 초과 1.5% 이하인 곳이 144개사(52%)에 달한다.
삼성전자,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국민연금이 지분을 들고 있는 주요 기업들이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현대차의 경우 최근 자사주 매입과 함께 배당 확대 계획을 밝히며 주주친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주주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해 배당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국민연금 5% 이상 기업…배당 확대 압력
현행법상 국민연금이 기업의 배당 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경우에는 '경여참여' 목적으로 간주돼 지분변동공시 특례와 단기매매차익 반환 예외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연기금은 배당과 관련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달 1일 금융위원회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이같은 제약 요인이 해소될 조짐이다.
개정안에는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 후속조치 일환으로 연기금의 배당관련 주주권 행사 제약을 없애는 방안이 담겼다. 연기금이 기업의 배당 결정이 영향력을 행사하더라도 경영참여 목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방향이다.
투자업계에서는 금융위원회의 개정안이 오는 17일까지 입법 예고된만큼 빠르면 올해 안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큰 손인 연기금이 배당 확대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면 기업들이 받는 배당 압력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게 투자업계의 판단이다.
김재은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배당 수익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데 반해 기업의 사내 유보율은 가장 높은 수준이어서 배당 확대의 당위성이 존재한다"며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는 배당에 인색하던 기업들의 성향을 바뀌놓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연기금 지분율이 높으면서 과거 배당수익률이 낮고, 배당 여력이 양호한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배당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에 해당하는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아모레퍼시픽, 아모레G, 고려아연, LF, 포스코켐텍, 대웅제약, 한국단자, 삼영무역 등을 꼽았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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