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계층 간 갈등·재정 파탄만 초래
복지 제도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자연이 준 자원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에 무상(無償)은 없다. 만질 수 있는 물건이든 만질 수 없는 서비스든, 그것을 얻으려면 누군가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본인이 그 비용을 지급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하지만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동 능력이 아예 없거나 떨어져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제도는 꼭 필요하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제도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지 제도가 잘돼 있으면 일할 유인이 줄어들고, 따라서 생산이 감소한다. 생산물을 나누는 분배 방식이 생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산이 감소하면 소득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들면 조세 수입이 줄어든다. 조세 수입은 줄어드는데 복지 지출은 줄이기 어렵고 더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 사회에서 복지 수혜자들도 투표권을 가지므로 복지 축소를 공약하는 후보자가 선거에서 당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 지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정부 재정은 파탄의 길로 들어선다. 지금 여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복지 지출을 위한 증세냐, 복지 지출 축소냐의 논란은 바로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복지 정책은 선의(善意)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국의 복지 제도도 공공선(公共善)으로 포장돼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에서는 가부장적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국가 소득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그들이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개인들에게 분배한다. 따라서 공공선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는 복지 정책은 필연적으로 자의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 앞에 무력한 개인들은 자신이 소유하는 자원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한다. 사회 구성원들 간에 갈등이 싹트고 고조된다.
지금 한국의 복지 정책이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수준의 복지도 아니다. 세금으로 뒷받침될 수밖에 없는 이른바 ‘무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학교 급식과 영유아 보육, 기초연금 등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 수준을 넘어서는 것들로서 정책의 자의성이 강하고 정부 재정을 훨씬 더 세게 압박하는 통제 불가능한 것들이다. 지금의 복지재정 부도 사태는 바로 이런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복지 지출은 결국 소득 계층 간 갈등을 야기하고 정부 재정의 파탄으로 귀결된다.
불가피하게 있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 제도의 문제도 나라 경제와 양립하고 지속 가능한 구조로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정책과 관련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편해 산재(散在)해 있는 복지 대상자들을 흡수·통합하고 가구당 최저 생계비와 보조금 지급 규칙 등을 재설계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또 각종 복지 제도에 흩어져 있는 소득재분배 기능도 흡수·통합해야 한다. 그래야 보험은 보험대로, 연금은 연금대로 제 기능을 하면서 굴러갈 수 있고 복지 관련 뇌관도 제거할 수 있다. 복지비용의 추계도 용이해진다.
경제 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빈곤을 탈출하고 복지 수혜자 수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점에서 복지 정책의 최종 목표는 모든 복지 수혜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상이라는 이름 아래 복지 수혜자를 새롭게 발견하고 늘려가는 것은 일단의 빈곤층을 항구적으로 고착시키는 것이다.
공공선에 바탕을 둔 현행 복지 제도의 실상은 대부분 드러났다. 무상 복지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러나 경제 불황이 겹쳐 현행 복지 제도의 문제가 빨리 드러난 것과, 이를 계기로 사람들이 무상 복지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면 한국의 미래를 위해 그다지 비싸지 않은 수업료를 지급한 것이라고 위로할 수도 있다. 선험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다면 경험적으로라도 배워야 한다. 복지 제도의 전면적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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