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과학자를 자판기로 봐요. 연구비 투입하면 결과물이 나온다는 식이에요. 과학자도 사람입니다. 관심과 사기를 먹고 사는 ‘사람’이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이 나오려면? 우선 국민들이 과학자의 생활에 관심 가질 필요가 있죠. 칭찬도 하고 꾸중도 하면서요.”
과학기술 전문 온라인매체 ‘대덕넷’ 이석봉 대표(53·사진)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그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기자로 10여 년 일하는 동안 과학기술 부처에 출입한 적도 없었다. 그런 그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매체를 창업한 사연이 궁금했다.
“해외기업 취재를 많이 다니면서 기업엔 기술, 국가엔 과학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또 하나의 계기는 일본 연수에서 들은 말인데요. 한국의 선진국 진입 걸림돌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라는 것이었죠. 과학기술, 그리고 지방의 중요성을 생각하니 바로 대덕이 떠오르더군요.”
한국에 돌아온 그는 지방 주재기자 파견을 자원했다. 이어 산업부에 배속돼 지방기업을 전담 취재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대중화와 함께 벤처붐이 일던 2000년 직접 대덕넷을 설립했다. 올해로 창업 15년째를 맞은 이 대표는 “지역과 과학 뉴스가 제대로 발신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귀띔했다.
대덕넷은 전문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은 과학 기사’를 지향한다. 읽히지 않는 전문적 내용보다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과학을 과학자의 전문영역이나 연구 결과로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면서 “국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과학동네 현장의 사람 냄새를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교 역할을 맡아 과학자들의 생활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게 모토다. 이를 통해 대중적 과학강국을 만들고, 과학이 국가 성장 동력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노벨상 수상 소식 들릴 때만 반짝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평소 과학에 관심을 갖고 직접 요구해 관철시키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이 대표를 지난 14일 한국경제빌딩에서 만났다.
- ‘대덕넷’이란 이름과 웹사이트가 특이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국내 언론은 이름이 좀 커요. ‘한국’ ‘조선’ ‘중앙’ 이렇게 붙잖아요. 외국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니죠.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는 지역을 대변하면서도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대덕넷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과학기술의 중심이란 상징성도 있으니까요. 웹사이트 주소인 ‘헬로디디(www.hellodd.com)’는 친근한 과학의 느낌을 주려 했어요. 대덕의 약자이면서 ‘디지털 드리머’, ‘드렁큰 드리머’를 뜻하기도 합니다. 중의적 명칭이에요. (웃음)”
- 프로필은 과학기술 쪽과 큰 연관이 없는데, 이쪽 분야 출입을 했나요.
“전혀요. 과학기술부 출입도 해본 적 없습니다. 다만 국제부 기자로 있을 때 해외기업 취재를 많이 다녔어요. 90년대 당시 동남아시아 진출 해외기업 중심으로 취재했었죠. 그때 기업엔 기술, 국가엔 과학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죠.”
- 굳이 지방으로 간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 연수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충격 받은 말이 있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데 걸림돌이 될 거란 얘기였어요. 생각하니 제가 지방에 대해선 깜깜하더라고요. 한국에 돌아가면 지방 근무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침 회사(중앙일보)에서 지방 주재 파견제도를 도입했어요. 자원했죠. 주위에선 말렸어요. 지방에 가면 낙오된다면서요.”
- 그럴 법도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가겠다고 했어요. 어디로 갈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대전을 지원했습니다. 보통 대덕에 연구단지가 있다는 건 풍문으로 들어봤어요. 그런데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죠. 그게 우리의 현주소예요. 국가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그것보다는 깊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과학자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장단점과 애로사항은 뭔지.”
- 직접 창업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주재기자로 갔지만 주로 지방 사회뉴스를 커버해야 했어요. 관심 있었던 과학 분야는 거의 다루지 못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고 서울로 돌아갈 시점이 된 겁니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만 한 셈이었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제가 먼저 회사에 제안을 했어요. 언론이 콘텐츠 있는 지역기업을 많이 알릴 필요가 있다, 지방기업을 전담 취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렇게 해서 지방기업을 취재했는데, 처음엔 기사가 좀 나가다가 신문에 잘 안 실리는 겁니다. 회사 입장에선 기사 가치나 비중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겠죠. 지면 제약이 제일 컸어요. 해결책을 찾는데 당시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벤처붐이 일었거든요. 이거다 싶어서 회사에 제안해 일정 지분을 투자받고, 퇴직금에 지인들에게 100만 원씩 투자받아 회사를 세웠습니다.”
- 그런데 온라인 매체의 경우 소재지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데요.
“대덕넷은 모델이 독특합니다. 대전 지역에 있으면서 이곳에 있는 과학자들이나 관련 기업들을 다루거든요. 과학기술, 산업 뉴스란 점에서 모든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어요. 차별성과 함께 보편성이 있는 거죠. 실제로 저희 독자 구성을 보면 25%가 대전 지역, 50%가 수도권, 나머지 25%는 여타 지역과 해외예요. 수도권 독자가 50%나 되는 지방 매체는 아마 저희가 유일할 겁니다. 인터넷 시대에 맞게 다변화 돼 있고 충분히 상품성이 있다는 얘기죠.”
- 킬러 콘텐츠는 뭡니까.
“저희 콘텐츠는 ‘과학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뉴스는 기본적으로 주목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람 냄새가 나야 해요. 신문 과학면 보세요? 잘 안 읽게 되죠? 과학을 지식으로만 접근하니 사람들이 안 보는 겁니다. 저희는 포커스를 다르게 잡았습니다. 과학자들의 생활 이야기를 국민들에게 전한다는 거죠.”
- ‘동네’와 ‘생활’ 이야기. 전문매체로선 색다른 시도 같습니다.
“과학동네 현장에 있으면서 국민들이 과학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과학자들도 결국 관심과 사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연구하는 데 얼마나 외롭습니까. 언론이 다루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면 과학자들도 열심히 하고 과학적 성취도 많아지겠죠.”
- 그렇죠. 과학자도 사람이죠.
“과학자를 연구비 주면 결과물 나오는 자판기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천만에요. 과학자도 사람입니다. 국민들도 ‘어려운 얘기다, 과학자한테 맡겨놓자’ 이렇게 생각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세금으로 과학자들 연구 지원하는 거예요. 내 돈 들어가는데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죠.
과학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융·복합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뭐합니까. 자기 연구실에만 갇혀 있는데요. 대덕단지 A연구소 연구원이 B연구소 가려면 일반인처럼 출입증 서류 써야 돼요. 통합시스템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그렇게 안 하죠. 세금으로 지원받는 연구세미나 공유시스템도 하나 없어요.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연구 결과를 기술화·상용화 하는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연구환경 개선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있어요. 사실 과학계의 구조적 취약점은 이미 거의 진단이 나와 있어요. 문제는 근본적 변화의 추진동력인데, 국민들의 관심이 그 동력이 될 수 있죠. 노벨상 수상 소식 있을 때만 반짝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우리 과학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볼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달라질 거라고 보나요.
“노벨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탓할 이유는 없어요. 우리나라 과학기술 예산이 30년 전 2000억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8조 원 가량 돼요. 지난 30년간 연평균 10% 이상씩, 다른 예산은 줄여도 과학기술 예산은 늘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계가 답을 해야죠. 다만 국민들도 결과 보고 한 마디 하고 신경 끌 게 아니라, 왜 수상을 못하는지 들여다보자는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확실히 달라질 거예요. 우리도 일본인이 수상하면 ‘옆집이 상 탔대’ 이런 식으로 동네 일이 되죠. 노벨상 수상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중계되잖아요? 생활이 되고 친근해지는 거예요. 기죽지 않고 친숙해지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도 노벨상 탈 때 됐다는 요구는 당연해요. 하지만 이걸 관철시키려면 늘 관심을 갖고 요구해야 합니다.”
- 만약 대덕단지가 서울에 있었다면? 지방과 과학, 두 가지 화두 중 뭘 택했을까요.
“저에게는 지방이란 키워드가 우선이었어요. 여전히 ‘서울공화국’으로 인한 문제가 많거든요. 역으로 생각해보죠. 대덕이 서울에 있었다면? 지금의 몇 배 이상으로 성공했을 겁니다. 대덕이 성공하지 못한 건 지방에 위치한 이유가 크다고 봐요.”
- 언론으로서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광고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요.
“저희는 광고 영업은 안 하고 오는 광고만 받아요. 15년 내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희 사이트를 보면 광고를 노린 낚시성 기사가 없어요. 사실 과학 분야의 특수성이 있어서 광고 붙기가 쉽지 않죠. 그렇다면 아예 이 부분은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자고 생각했습니다. 콘텐츠 제작이나 HR(인적 자원) 컨설팅, 과학캠프 같은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내고 있어요.”
- 요즘 특히 기술창업, 청년창업이 강조됩니다. 창업 선배로써 조언 한 마디.
“사실 저는 청년창업에 대해선 회의적이에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를 꼽는데 그런 성공 사례는 미국에서도 극히 일부입니다. 한국에선 더더욱 나오기 어렵죠. 창업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중소기업청 공무원이나 대학 교수들인데 대부분 창업 경험 없는 분들 아닌가요? 글쎄요. 도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지속가능성, 성장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조직생활부터 먼저 경험한 뒤 창업하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 이석봉 대표는…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주오대 경제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지냈다. 1987년 기독교방송국에 입사한 뒤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2000년 대덕넷을 창업, 과학산업 커뮤니티 정보 교류의 가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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