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원가 아끼고 아껴서 '아낌없는' 지원…지혜 주머니란 뜻의 '혜낭록' 경영

입력 2014-11-19 00:11  

CEO 오피스 - 이상욱 농협 농업경제 대표

PC 예약종료 등 사소한 것부터 실행…2년새 161억 절감
납품대금 지급기한 40일 → 5일로 줄여 농가·가공업체 '자금 숨통'

모든 아이디어 수첩에 적고…현실화 가능성 따져 실천
농산물 포장에 기업광고 실어 가격 낮춘 것도 혜낭록 속 아이디어



[ 조진형 기자 ] “하나로마트 협력업체에 납품대금을 최대한 빨리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오세요.”

지난해 6월 이상욱 농협중앙회 농업경제 대표이사는 취임 직후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이전까지 40일이던 협력업체 납품대금 지급 기일을 5일로 대폭 단축했다. 정산 준비기간과 휴일을 고려하면 ‘즉시 정산’ 수준이다. 덕분에 농협의 중소 협력업체들은 2300억원에 이르는 운용자금을 조기에 지원받아 자금 숨통을 틀 수 있게 됐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현금을 즉각 받은 협력업체들이 납품 가격을 깎아줘 농협은 원가를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며 “여기서 나온 이익은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강조해온 상생경영의 선순환이다. 이 대표의 원가절감운동인 ‘EDLC(상시원가절감·Every Day Low Cost)’는 이처럼 상생으로 시작됐다. 그는 자체적으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분야를 하나둘씩 찾아갔다. 유통사업장을 찾아 ‘숨은 손익 찾기 현장토론회’를 열고 인트라넷에 전국 지점 사례를 공유했다. 대전유통은 노후 전등을 LED로 교체해 7400만원을 절감했고, 충북유통은 PC 종료 예약프로그램을 개발해 전기료 4200만원을 아꼈다. 군위유통센터는 청소용역 운영시간과 야간경비 방식을 바꿔 연간 1억7500만원을 절감했다.

수도 전기 등 사소한 것부터 용역비 재고관리 등의 분야까지 EDLC 효과는 적지 않았다. 농업경제는 지난해 비용 78억원을 절감한 데 이어 올 들어 10월까지 83억원을 아꼈다. 이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의 저가 정책에 대응하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며 “가격 인하 요인을 찾아낼수록 소비자와 농가 모두에 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체킹’의 달인

농협 직원은 이 대표의 꼼꼼함에 혀를 내두른다. 한 직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것을 확인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 스스로도 ‘체킹(checking)의 달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모르는 것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아는 것을 반드시 실천하는 원동력이 바로 체킹의 힘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일상생활부터가 그렇다. 그는 골프를 치러 가기 전날 밤 “런·빤·모·상·하·신·양·수·썬·치”라고 웅얼거리며 준비물을 챙긴다. 러닝셔츠·‘빤스’(팬티)·모자·상의·하의·신발·양말·수건·선크림·칫솔의 머리글자로 자신만의 주문을 만든 것.

책상 위에는 겉표지에 ‘혜낭록(慧囊錄)’이라고 쓰인 수첩이 항상 놓여 있다. 그는 TV를 보거나 이동할 때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지에 적어 가방에 넣어둔다. 나중에 메모지에 적은 내용을 혜낭록에 옮겨 적으면서 실현 가능성을 따져본다. 실천할 부분은 밑줄을 친다. 이 대표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회의를 열어 좋다는 결론이 나면 반드시 실천한다”고 말했다.

주목받고 있는 농산물 상생마케팅도 혜낭록을 거쳤다. 농산물 상생마케팅은 기업의 홍보 내용을 담은 스티커를 농산물 포장박스에 부착해 소비자에게 할인판매하는 것으로, 기업과 소비자 모두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특유의 꼼꼼함은 오랜 현장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1979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이후 근무기간 35년의 절반을 조직의 장(長)으로 지냈다. 1996년 팀장으로 승진한 뒤 총무부 부부장 시절을 보낸 1년을 빼고는 공판장 유통센터장 부서장 등을 지냈다. 이 중 12년은 현장을 지휘했다.

하나로마트 매장 등과 같은 현장에 가면 반드시 이슈를 만들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의례적인 현장 방문은 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매장을 한번 가 보면 가격표나 진열 등 사소한 것이라도 단번에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며 “현장에서 바로 이슈를 제기하고 공감을 얻어 전 사업장에 전파한다”고 말했다.

성심으로 ‘인정 관리’

이 대표의 경영철학 핵심은 ‘사람’이다. 가식이 아닌 진실로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말한다. 그는 이를 ‘성심으로 인정 관리’라고 표현했다.

2007년 하나로마트 고양유통센터장 시절 농협 직원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까지 총 1200명을 챙겼다. 상을 당한 직원에게는 가장 좋은 제수용품을 보내고, 직원 자녀가 수능을 앞두고 있으면 격려편지와 찹쌀떡을 보냈다. 직원 자녀들이 취업을 고민하면 상담도 해줬다. 이 대표는 “유통은 다른 산업과 달리 현장 중심”이라며 “사람 관리에서 승부를 내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솔선수범도 다르지 않다. 오전 6시반에 출근해 9시 매장 오픈 전까지 양파 대파 등 직원들이 진열을 꺼리는 제품 위주로 직접 진열하기도 했다. “역사가 말해주듯 평소 진심으로 대하면 위기가 닥칠 때 직원들이 온몸을 던져 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를 ‘백우(白愚)’라고 부른다. ‘백두산 아래 가장 어리석다’는 뜻이다. 성난 농민이나 소비자, 국회의원, 납품업체 관계자 등을 대할 때 항상 겸손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린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진정한 겸손은 그 어떤 모욕 굴욕 수치를 이겨내고 극복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라는 말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며 “사람 관계도 역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경영철학을 조직 관리에도 활용한다. 승진 원칙에 직원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매월 과일팀 정육팀 등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등 평가보상시스템을 활용하는 가운데 직원 조직 내 관계나 대외관계 등을 고려해 승진 여부를 판단한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그러나 이 대표는 철저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사업장의 한 해 목표를 세울 때 매우 까다롭게 근거를 묻는다. 기계적으로 ‘종전 실적의 10% 증가’ 등과 같은 목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는 “사업장의 특정 지역 인구가 얼마나 전출입했고, 그로 인한 소비유발 효과가 얼마인지 등을 파악한 뒤 현실적인 목표를 세운다”며 “목표 관리를 중요시하고 성과에 대해선 철저하게 보상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평가가 제일 두렵다고 했다. “내가 임기에 벌인 사업이 조직을 떠난 뒤에도 잘못되지 않도록 데이터 기반의 경영을 고집하고 있다”며 “농우바이오 인수도 이런 차원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직원들에게는 항상 ‘꾼’이 되라고 말해준다. 그가 말하는 꾼은 자기 분야의 최고다. 이 대표 자신도 농협중앙회 입사 이후 경제학 석·박사과정을 마친 데 그치지 않고 주요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을 모두 섭렵하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이상욱 대표 프로필

△1958년 출생 △전남 순천고 졸업(1976년) △농협대 졸업(1979년) △서강대 경제학 석사(1993년) △중앙대 경제학 박사(2007년) △농협중앙회 입사(1979년) △서울 양곡공판장장(2002년) △영등포공판장장(2003년) △강서공판장장(2004년) △교육연수부장(2006년) △고양유통센터장(2007년) △농촌자원개발부장(2010년) △홍보실장(2011년) △농협 농업경제 대표이사(2013년~현재)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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