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글로벌 의료관광 현주소
작년 4000억 수입 올렸지만 日·대만 추격으로 성장 둔화
기존 의료법 환자유치 한계…국제의료사업법 제정 시급
[ 이준혁 기자 ]
국내 병원들의 해외 환자 유치에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병원들의 해외 진출과 더불어 해외 환자 유치 등 국제화 움직임이 크게 늘고 있는 것. 하지만 일각에선 한국 의료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라는 기대와 함께 단기 수익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의료관광 사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환자 진료수입 4000억원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은 외국인 환자는 총 191개국, 21만1218명(연인원 65만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진료 수입은 약 4000억원에 달했다. 국적별로는 중국·미국·러시아·일본·몽골 등의 순이었다. 특히 러시아 환자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 주목된다.
러시아 환자는 지난해 2만4000여명이 한국을 방문, 2012년 1만6000여명에 비해 46%나 증가했다. 정부가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을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중국·미국에 이어 3위에 올라선 것이다.
한국은 2009년 의료법 개정으로 외국인 환자에 대해 유치·알선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 개정 이후 해외 환자가 2009년 6만명에서 2011년 12만2000명, 지난해에는 21만명을 넘는 등 연평균 37%씩 급증했다. 진료비로 1000만원 이상을 지출한 고액 환자는 2009년 816명에서 지난해 6580명, 1억원 이상 쓴 환자도 10명에서 117명으로 크게 늘었다.
아랍에미리트 환자 지난해 237% 늘어
민간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 외국 정부 간 환자 송출을 통한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 성과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 간 환자송출 협약의 성과로 UAE 환자는 2013년 1151명으로, 2012년 342명보다 237%나 급증했다.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771만원이었다. 외국인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 186만원에 비해 약 9.5배나 높다. 지난해 외국인 환자 진료에 따른 수입은 3934억원으로, 재작년(2673억원)보다 47% 증가했다. 1인당 평균 진료비는 186만원(전년 대비 10.7% 증가)으로, 내국인 1인당 연간 진료비 102만원의 1.8배 정도다.
중국인 환자는 환자 수와 더불어 총진료비도 단연 1위다. 총 1016억원을 썼다. 이어 러시아 환자가 879억원을 지출했다. 국가별 1인당 진료비 1위는 아랍에미리트 1771만원, 2위는 카자흐스탄으로 456만원 순이다.
중국 환자는 성형외과·내과·피부과 진료를 가장 선호했다. 반면 러시아 환자는 내과·검진센터·산부인과·일반외과·피부과를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63만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가 국내 의료기관을 방문해 각종 치료를 받았고, 이들은 약 1조원(9억5000만달러)의 진료비를 썼다.
법적·제도적 뒷받침 시급
의료 관광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2009년 정부가 해외 환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래 올해 의료관광객 증가폭이 가장 작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최근 “1~10월 해외 환자 수를 바탕으로 올해 전체 환자 수를 추산한 결과 25만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21만1218명)보다 18.4% 정도 증가한 수치다. 2009년부터 연평균 37%대의 성장을 거듭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성장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성장세 둔화는 중국·중동 환자를 두고 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이 가열됐기 때문.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대만의 투자가 늘면서 ‘아시아 의료관광 신(新)삼국지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메디컬엑설런스저팬(MEJ)’을 출범시켜 해외 환자 유치를 끌어올렸고, 대만은 언어적 문화적 장벽이 없는 중국 본토 환자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정기택 보건산업진흥원장은 “최근 일본과 대만에 중동, 중국 환자를 뺏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의료관광객 100만명 시대를 열기 위해선 의료관광 선진국의 장점을 흡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의료지원법 등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의료관광 경쟁국인 태국·싱가포르 등과 차별화되는 만족도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수한 의료 시스템이 실제 수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금융·세제·정보 등의 종합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정 원장은 “기존의 의료법은 국내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주요한 정책적 고려사항으로 보고 있어 국제의료사업의 육성과 지원을 위해서는 별도의 법률을 통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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