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두 개의 은행

입력 2014-11-24 21:11   수정 2014-11-25 05:04

저금리 저성장 속 위기의 은행
치열한 변화와 혁신 필요할 때

김주하 < 농협은행장 jhjudang@nonghyup.com >



가랑비 내리는 이른 아침, 집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막바지 단풍 풍경이 고즈넉하다. 덕수궁과 정동길에 자리잡은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건물과 잘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제 곧 저 노란 잎들이 질 것임을 알아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은행나무 빛깔이 탐스러워 보인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그 잎들을 모아 책갈피에 꽂아둘까 싶다.

사실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나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은행나무는 소위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3억년이라는 오랜 기원을 가진 나무이며, 암수딴그루로 천년을 넘기고도 생식 활동을 계속할 만큼 그 수명이 매우 길다. 특히 침엽수로 분류되지만 부채꼴 같은 잎 모양이 활엽수에 가까워 이에 대한 논란이 있는 독특한 식물이기도 하다. 원래 침엽수였으나 오랜 기간 진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양으로 수억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발음이 같아서일까. 나는 이런 은행나무를 보며 내가 종사하고 있는 은행업을 생각한다. 물론 그 한자와 어원은 전혀 다르다. 은행(銀杏)나무는 씨가 살구(杏)처럼 생기고 은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은행(銀行)은 은(銀)을 취급하는 점포(行)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은이 화폐로 쓰였고, 상인 조합의 명칭이던 ‘행(行)’은 길가에 늘어선 가게나 점포를 의미하기도 했단다.

비록 그 뜻과 어원은 다르지만, 둘 다 사람들 가까이에서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은 서로 닮아 있다. 은행나무가 시원한 그늘과 포근한 단풍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듯이, 은행업도 자금중개와 금융 서비스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은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고객 만족, 고객 행복을 외치며 직원의 고객 중심 가치관 형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연말을 맞아 내년도 경제 전망이 속속 쏟아지고 있다. 여전한 불확실성 속에 은행 산업의 경영 여건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은 듯하다. 지난 수년간 지속돼 온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 사실상 은행업은 위기의 시기를 맞고 있다. 오랜 진화를 거친 후 수억년간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은행나무처럼, 길이길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은행(銀行)나무를 가꾸기 위해 더욱 치열한 변화와 혁신의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한다.

김주하 < 농협은행장 jhjudang@nonghyup.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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