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김영사, 상도덕까지 문제 삼으며 공세
"20만弗 이상 제시했지만 판권 연장엔 실패"
'정의란…' 선인세 5년 만에 10배 이상 뛰어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놓고 국내 출판사간 경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를 책을 재출간한 와이즈베리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감수와 해설을 보완해 독자 수준과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번역해 재출간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0년 국내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가 판매량에 비해 완독 비율이 현저히 낮은 점을 반영해 별책부록 해설서를 제작하는 한편 저자 초청 특별강연도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한 김영사는 다음날 오후 이례적으로 와이즈베리의 보도자료 내용을 반박했다.
김영사는 "와이즈베리가 김영사판 '정의란 무엇인가'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했지만 이를 거절했다"며 "김영사판 번역자로부터 와이즈베리에서 새로 작업한 번역본이 원래 번역을 많은 부분 표절했다며 적절한 대응방안을 문의하는 메일도 받았다"고 알렸다.
또한 "와이즈베리가 홍보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새 번역'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면서 "타 출판사가 성공적으로 출판한 책의 판권을 거액 투자로 가져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유의 메시지와 출판정신을 담으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영사는 와이즈베리가 김영사판 제목인 '정의란 무엇인가'를 그대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법적으로 편집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계에 보이지 않는 룰과 매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영사는 "영어판 원제인 'Justice'를 번역하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되지 않는다"며 "이것이 하나의 제목이 되고 현상이 된 데는 기존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터의 창조적인 노력이 있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에 대한 상의 없이 제목을 그냥 사용하는 것은 양식 있는 출판사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김영사의 날선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와이즈베리가 책 표지에 '한국 판매 200만부 돌파'라는 홍보성 문구를 쓴 것에 대해서도 "정확한 부수는 123만부"라며 "에이전시, 저작권사, 김영사를 통해 정확한 부수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을 이었다.
이에 대해 "단순한 실수 또는 보다 잘 팔기 위한 애교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것은 기존 책을 출판한 김영사와 저작권사의 업무 신뢰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시장에 대한 혼란, 독자에 대한 기만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사는 지난 2010년 5월 '정의란 무엇인가'를 번역 출간해 지난 5년간 123만4천여부를 판매하며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켰다.
2009년 4월 2만달러(당시 환율로 약 2300만원)에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어판 판권을 사들인 김영사는 지금까지 샌델 교수에게 모두 14억7천600여만원의 인세를 지급했고, 연장 계약을 위해 20만달러(약 2억2200만원)를 제시했으나 더 높은 금액을 낸 와이즈베리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도 가장 공격적으로 마케팅한 책이어서 연장 계약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며 "연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했는데 저자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고 말했다.
샌델 교수의 또 다른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번역 출간했던 와이즈베리 측은 "금액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금액 때문에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마케팅 프로모션이 샌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데다 이번에 제출한 마케팅 계획서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재출간에 맞춰 다음 달 3일 방한하는 샌델 교수는 4일 숭실대 한경직 기념관에서 '정의와 시장, 그리고 좋은 사회'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샌델 교수는 와이즈베리를 통해 재출간된 한국어판 서문에 "세월호 비극, 북한 문제, 역사 왜곡 등의 문제는 극심한 이견과 격렬한 논쟁을 촉발시키나, 정의에 관해 경쟁하는 원칙들을 두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적으로 다투는 것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민주주의의 징표"라고 했다.
이어 "한국인들이 이러한 물음에 대해 공개담론으로 논의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깊은 인상을 받고 존경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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