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고기잡는 법 안 가르치고 생선을 나누어 주었다"

입력 2014-11-28 18:33  

포퓰리즘 반성문 쓰는 남미

세계7위 경제대국 아르헨티나 '페로니즘' 으로 추락
베네수엘라 등도 포퓰리즘 후유증에 시달려




영광은 천천히 오고 몰락은 순식간에 온다. 경제적 강국도, 문화적 강국도 번영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 정상에서 자만하면 몰락은 한순간에 닥쳐온다. 이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두에 적용되는 이치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었다. 하지만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아르헨티나를 휩쓸면서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 강국은 국가 빚도 제대로 못 갚은 나라로 전락했다. 경제 강국으로 지구촌의 부러움을 샀던 아르헨티나는 이제 ‘실패에서 배우는 나라’쯤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몇몇 나라도 ‘포퓰리즘’의 후유증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경제대국에서 ‘빚 못 갚는’ 나라로

아르헨티나는 2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10대 선진국이었다. 한때는 7대 경제대국이라는 명성도 날렸다. 그런 나라가 2001년에는 금융위기의 중심에 섰고, 대외부채 일시 지급 중지를 선언했다. 2002년 초에는 공식적으로 외채에 대한 채무 불이행(디폴트)에 빠졌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아르헨티나에는 여전히 ‘디폴트 공포’가 곳곳을 떠돈다.

아르헨티나가 몰락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남미 포퓰리즘을 상징하는 ‘페로니즘(포퓰리즘)’을 꼽는다. 1940년대 당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 정권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다. 특히 그의 부인 에바 페론은 서민들에게 즉석에서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등 인기영합적 정책을 주도했다. 당시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페론이 집권한 이후 아르헨티나 재정은 바닥나고 경제는 피폐해졌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원래 복지에는 관성이 붙는 법이다. 무분별한 복지로 홍역을 치렀음에도 아르헨티나 정치권은 여전히 ‘페로니즘’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 한다. 유권자들 역시 페로니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곡된 시장경제 질서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경제가 위기의 늪에서 허덕이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시된 시장원리’다. 페로니즘이 득세하면서 아르헨티나는 외국 기업이나 자본을 배척했고, 지나친 보호무역을 고수했다. 무리한 사회보장 제도로 재정이 거덜나면서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노동자 위주 정책으로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악화되면서 경제성장 동력도 약해졌다.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졌다. 이런 여러 요인이 어우러지면서 아르헨티나는 디폴트(국가채무 불이행)라는 최악 상황까지 맞은 것이다.

“샤워 중 노래를 부르지 마라. 샤워는 3분 만에 끝내라”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로부터는 극복될 수 없다…우리는 사회주의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외쳤던 고(故)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역시 남미 좌파 블록의 선두에서 포퓰리즘을 주도한 인물이다. 차베스는 서민 위주의 정책으로 노동자층에선 나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의 근간인 석유산업 국유화로 경쟁력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석유대국이 만성화된 전력난에 시달리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전문가들은 ‘외세 배척’이라는 정치적 슬로건을 앞세워 자본주의라는 외부와 장벽을 친 결과 국가 영속성을 좌우하는 펀더멘털이 취약해졌다고 지적한다. 국가 지도자가 파이는 키우지 않고 ‘나눠먹기’로 포퓰리즘에 편승한 결과 경제의 속병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뒤늦은 반성

“우리는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수많은 실수를 했다. 실패한 경험을 공유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루이스 알베르트 라카예 전 우루과이 대통령) “포퓰리즘은 사람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생선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포퓰리스트는 부(富)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와 정당한 소득분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카를로스 메사 전 볼리비아 대통령)

최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글로벌피스컨벤션 2014에서 전 중남미 대통령들이 쏟아낸 일종의 ‘포퓰리즘 반성문’이다. 라우라 친치야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포퓰리즘을 ‘중남미에서 가장 나쁜 악’으로 규정했다. 그들 또한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정치를 폈다. 하지만 권력에서 거리를 두고 보니 포퓰리즘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해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다. 성장과 복지는 균형을 맞춰야 하는 짝이지 결코 한쪽으로만 쏠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던져준 것이다. 그건 복지를 외면한 성장, 성장을 외면한 복지 양쪽 모두에 주는 교훈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자원의 두 얼굴 - 석유의 저주에 빠진 베네수엘라…축복으로 바꾼 노르웨이

1970년대 베네수엘라 석유장관은 석유를 ‘악마의 배설물’이라고 불렀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 오일머니에 의존한 경제가 언제든 붕괴될 수 있음을 예언한 경고였다. “석유 대신에 물을 발견했더라면…”이라고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산유국에는 오일달러가 넘쳐난다. 하지만 달러가 많아지면 물가는 오르게 된다. 원유 관련 산업 외에는 대부분 경쟁력도 약해진다. 경제의 전반적 생산성이 떨어지고 석유자원을 관리하는 정치체제 역시 부패한 경우가 많다. 국민에게 ‘현금 다발’을 안겨주면서 근로의식도 무뎌진다. 석유자원이 풍부한 남미나 중동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산업 경쟁력이 취약하고 민주주의도 발전이 더딘 이유다. 석유 매장량 세계 수위를 다투면서도 경제 위상은 초라한 베네수엘라가 대표적 사례다.

반면 노르웨이는 자원을 축복으로 만든 국가다. 노르웨이는 1960년대 말 북해에서 석유와 가스를 대량 시추하면서 산유국이 됐다. 현재 5위의 석유 수출국이자 3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로 벌어들인 달러를 ‘포퓰리즘용’으로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돈으로 별도의 국부펀드를 만들어 국가의 부(富)를 키웠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8600억달러(약 930조원)로 세계 최대 규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노르웨이 국부펀드 규모가 2020년에는 1조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노르웨이와 베네수엘라는 자원이 약이 되면서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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