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서 읽는 처세의 달인들

입력 2014-11-30 10:53   수정 2014-11-30 11:36

춘추전국 시대, 조조는 유비를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진퇴양난에 빠졌다. 저녁 식사로 닭갈비 국이 나온 걸 본 뒤 그날의 암구호를 ‘계륵’으로 정했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을 의미한 것이다. 조조의 부하는 이 암구호를 듣자마자 조조의 마음을 알아챘다. 부하들에게 “짐을 싸라”고 명령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조는 기강이 해이해 졌다는 이유로 양수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러고선 태연하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양수는 조조의 깊은 마음까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했지만, 자신의 포지셔닝에선 한참 벗어나 버렸던 것이다.

고전에서 배울 수 있는 직장인들의 ‘처세술’를 다룬 책이 나왔다. 알에이치코리아의 <처세>다. 자기계발서 등을 꾸준히 써온 베스트셀러 칼럼니스트 이남훈 씨가 저자다.

논어, 주역, 사기, 춘추, 손자병법, 초한지, 한비자, 삼국지 등 고전에는 불세출의 ‘처신의 달인’이 다수 등장한다.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며 모든 사람에게 추앙받던 인물이 한 번의 말실수와 잘못된 행동으로 최후를 맞는가 하면 당대의 영웅들에 비해 뛰어나 보이지 않던 인물이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사례를 살피면 현대 조직사회의 구성원에게 꼭 필요한 자기 경영과 관리의 지침을 알 수 있다. 군웅이 할거하고 모략과 술수가 판치는 난세의 전장은, 무한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골몰하는 기업과 그 안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조나라 혜문왕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인근의 한나라와 위나라가 1년 가까이 전쟁을 하고 있어서다. ‘샌드위치’ 신세였던 조나라 입장에선 전쟁 참여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혜문왕은 뛰어난 전략가인 진진에게 해답을 구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의 싸움은 두 마리 호랑이의 싸움과 똑같습니다. 우리 조나라가 해야 할 일은 빤한 것 아니겠습니까?” 진진의 조언을 들은 혜문왕은 두 나라의 싸움을 관망했다. 결국 위나라는 멸망했고, 한나라 역시 이기기는 했지만 국력이 크게 쇠락했다. 혜문왕은 한나라로 진격해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불편한 상황에서 맡고 싶지 않은 역할을 강요당할 때는 이를 억지로 조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방관만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느 한쪽 편에서 전면전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 어느 쪽 호랑이가 먼저 쓰러질 것인가를 지켜보는 인내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이 책은 생존이 화두가 된 비즈니스 현장에서, 구성원이 생존의 근거를 마련하고 성장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을 담고 있다. 박봉, 성과와 매출 압박,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가족 부양과 입신양명을 위해 야근과 특근을 불사하고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오늘의 직장인에게 비전을 제시한다.

이남훈 씨는 “처신에 등장하는 수많은 ‘처신의 달인’을 살펴보면 이들이 ‘탁월한 포지셔닝의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어진 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줄 알고, 자신의 능력과 경력에 맞는 탁월한 말솜씨와 행동으로 가장 적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최적의 포지셔닝을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295쪽. 1만3000원.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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