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CEO 열전⑫] '시네마 키드, 백신 개발에 뛰어들다'…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입력 2014-12-02 08:30  


기업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한 기업은 CEO의 역량과 혁신의 자세, 영속기업을 만들기 위한 열정 등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신규 상장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공모주 투자부터 상장 이후 주식투자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들은 알짜 기업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은 주식시장에 갓 데뷔한 신규 상장기업부터 상장승인 심사를 마친 기업들의 CEO들을 집중 탐구하는 시리즈물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편집자 주]


1996년 세계 두번째로 세계건강보건기구(WHO)로부터 승인 받은 B형 간염 백신 개발, 2006년 세계 두번째로 유럽의 승인을 얻은 성장호르몬 바이오시밀러 개발, 한림공학원 선정 대한민국 100대 기술 및 주역, 10개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과 상업화 성공.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사진·60)가 그간 이뤄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대학 진학을 위해 펴든 과학교과서에서 'DNA 이중나선 구조'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박 대표는 영화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국내에 한 곳(연세대학교) 밖에 없던 생화학과를 진학하기로 결정한 것은 순전히 제임스 왓슨(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인물)의 스토리 때문이다.

[한경닷컴]이 지난달 24일 여의도에서 바이오의약품 기업의 대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더스틴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을 보고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가 어떻게 백신과 의약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가가 됐는지 들어봤다.

◆ 영화감독 꿈 꾸던 소년, 'DNA 이중나선 구조'에 빠지다

외유내강(外柔內剛). 겉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단단함을 갖추고 있다는 이 말 뜻은 박 대표에게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쑥스러움을 많이 탔고 절제된 언어로 감정 표현을 자제했지만, 회사와 일 얘기를 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학창시절 역시 그는 튀지 않는 학생이었다는 게 그의 회상이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보단 영화보기를 즐겨했고, 영화는 그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해 여러 편의 단편소설들도 써냈다.

"'나바론 요새'와 '더스틴호프먼의 졸업' 같은 영화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 꿨어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하잖아요. 어떤 장면을 먼저 찍고 나중에 찍을지, 또 어떻게 찍을지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계산돼야 하는 데 이런 요소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다 생화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대학진학을 위해 펴봤던 과학교과서 맨 마지막 장에 등장했던 DNA 이중나선 구조에 관한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등학교 생물책이었어요. 당시엔 생화학이라는 학문이 국내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저 어감 탓에 '꽃(花)을 공부하는 학문인가' 하는 오해를 살 정도로 생소했죠. 유전자니 단백질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국내에 유일하게 있던 생화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 연구 및 해외사업 전문가 평가…"전문성보단 열정 중요"

주변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강직하고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신중한 말투, 세련된 외모 등에 그의 연구원 이력까지 더해져 그를 대학 교수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하지만 본인은 다른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포스트 닥터)을 거친 뒤 국내로 들어와 바로 기업(LG생명과학 연구소)에 합류했어요. 애초부터 학문을 계속하겠다는 뜻보다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후 여러 기업에 다니면서 해외사업개발을 주로 담당했죠. 앉아서 공부만 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는 LG생명과학 연구소의 바이오그룹 리더와 한화석유화학과 드림파마 임원, 바이넥스 대표 등을 거치면서 연구개발과 해외사업개발 이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업계의 몇 명 없는 전문가로 평가 받아왔다.

"1990년대만 해도 의약바이오 분야에서 글로벌 해외사업을 해 본 사람이 거의 드물었어요. 과거 기업에 몸을 담았을 때 절반은 연구소에서 나머지 절반은 해외라이센싱을 개발하러 다니는 일을 했죠. 거의 혼자 공부하면서 개척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 때문이었을까? 그는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 역시 생화학과 바이오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없으면 일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얘기했다. 결과물을 단기간에 확인하기 어려운 분야라서다.

"바이오의약은 전형적인 소프트웨어 사업이에요. 임상 실패하면 종이만 남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같이 일하는 직원을 뽑을 때 전문성보다는 일을 최대한 재밌게 할 수 있는 인재를 선택해요. 꼭 이 분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요."

◆ "과거 바이오사업에서 수익창출한 '트랙 레코드' 있어"

알테오젠은 기존의 바이오벤처 회사가 갖고 있던 사업 수순을 전혀 따르지 않는 회사로 평가 받고 있다. 기관이나 벤처캐피탈로부터 자금을 투자 받은 뒤 이 돈으로 신약 개발에 돌입하는 것이 기존 업체들의 프로세스였다.

"대부분의 바이오의약 회사들은 신약에 집중을 하죠. 회사를 상장한다고 하더라도 연구개발에 큰 돈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연간 적자가 커요. 한 마디로 신약이 실패로 끝나게 되면 회사 전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오게 되는 거죠."

그는 상장 전부터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몰두했다. 원래 약과 동등한 효과를 내면서 저가에 공급이 가능한 바이오시밀러가 그의 해답이었다. 바이오시밀러는 한 마디로 그의 '진짜' 사업에 투자하기 위한 '주춧돌' 역할인 셈이다.

알테오젠은 바이오의약 회사로는 드물게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4개년 연속 흑자를 달성한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 55억원 영업이익 15억원을 달성했고, 올 상반기도 매출액 36억원 영업이익 8억원 가량을 기록 중이다.

알테오젠의 핵심사업은 바이오베터 분야다. 바이오베터란 바이오시밀러를 개량한 약품이다. 바이오시밀러에 신규기술을 적용해 기존 바이오신약보다 더 개선된 효과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업계에선 '슈퍼바이오시밀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알테오젠은 바이오의약품의 인체 내 지속성을 향상시켜주는 단백질 물질인 '넥스피'를 융합하는 기술과 항체와 약물 접합에 필요한 '넥스맵 ADC' 기술을 확보했다. 이를 시장에 어필하는 게 박 대표의 과제다.

"기업의 원칙 중 하나가 영속성입니다. 제품을 계속 팔아야겠죠.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비즈니스에 꿈을 갖고 국내 기업에 들어와서 수익을 창출하고 다시 재투자한 '트랙 레코드'를 저는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닷컴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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