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 깬 기업 임원 승진] '기업의 ★' 10명 중 4명 현장통…믿을 건 실적뿐

입력 2014-12-14 22:40  

10개 그룹 올 전무 이상 승진·전보자 198명 분석해보니

위기 땐 '성과주의' 인사
LG 출신이 삼성에서 사장…과장급 나이에 상무 발탁도

야전사령관형 두각
"현장에 답이 있다" 공감대…여성들 '유리천장'은 여전



[ 남윤선 기자 ] 올해 재계 임원 인사의 키워드는 ‘성과주의’다. 기업에 따라 쇄신(임원진 대폭 교체)을 택한 곳도 있고 안정(소폭 교체)을 택한 곳도 있지만 어느 기업이든 철저한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을 적용했다. 현장 전문가가 급부상한 것도 특징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4일 삼성, LG, SK 등 주요 10개 그룹의 전무 이상 승진·전보자 198명을 분석한 결과다. 엔저(低)와 중국 업체들의 거센 도전으로 국내외 경영 여건이 나빠지면서 다른 어느 해보다 “믿을 것은 실적뿐”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

올해 재계 사장단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 중 한 명은 전영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이다. 그는 지난 1일 삼성전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전 사장의 사장 승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것은 그가 1991년 옛 LG반도체에 입사해 9년간 일한 경력 때문이다. 당초 ‘LG 출신이 삼성 사장이 될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있었지만 삼성은 올해 스마트폰의 실적 부진을 메워준 전 부사장의 성과를 잊지 않았다. 재계에선 “출신이나 학벌보다 실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삼성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의 독보적 반도체 기술인 ‘V낸드 플래시’ 개발을 이끈 신우균 반도체연구소 상무는 승진 연한보다 2년 빨리 전무로 발탁됐다. 데이비드 스틸 삼성전자 북미 기획홍보팀 전무는 북미 지역에서 삼성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외국인으로선 세 번째로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인사 원칙이 재확인된 것이다.

LG전자도 세탁기 세계 1위 수성에 성공한 조성진 가전담당 사장에게 지난달 인사에서 에어컨 부문까지 새로 맡겼다. 조 사장은 ‘고졸 출신’으로 30여년간 세탁기에만 매달리며 LG 세탁기를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여상덕 LG디스플레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사장 승진도 재계에선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고경영자(CEO)가 회장이나 부회장이 아닌 사장급인 조직에서 CTO가 사장급으로 승진한 전례가 드물다는 점에서다. LG 관계자는 “LG가 그룹 차원에서 미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개발 능력을 인정한 결과”라고 말했다.

SK도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 수장에 51세의 장동현 사장을 앉히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성장 정체에 빠진 통신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다. 본지 조사 결과 전무급 이상 승진·전보자 198명 중 40대가 10.6%를 차지한 것도 성과주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기까지 20년 넘게 걸린다”며 “40대에 전무 이상 직함을 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말했다.

상무급 승진자에게서도 발탁 인사가 적잖이 눈에 띄었다. 특히 삼성전자 미국 실리콘밸리연구소의 프라나브 미스트리 상무(33)와 LG전자의 우람찬 상무(36)의 승진이 주목을 받았다.

미스트리 상무는 360도 3차원 카메라 등 세상에 없던 제품을 개발했고 우 상무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을 회생시킨 ‘G3’를 기획했다. 나이로 따지면 대리·과장급이지만 뛰어난 성과 덕분에 ‘기업의 별’이 됐다.

현장통의 부상

올해 임원 인사에선 성과주의와 함께 생산 현장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전무급 이상 승진·전보자 198명 중 현장 전문가가 8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전략기획통(47명), 영업·마케팅 전문가(21명), 연구개발 전문가(7명), 재무통(11명) 순이었다.

지난해 본지가 전무급 이상 승진·전보자를 분석했을 때 37%가 전략기획 전문가였던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에는 경영 전반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략기획통이 주목받은 데 반해 올해는 어려운 경영 환경으로 “현장에 답이 있다”는 공감대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은 여전했다. 200명에 육박하는 전무급 이상 승진·전보자 중 여성은 하혜승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사업부 전무가 유일했다. 모 대기업 한 여성임원은 “자녀 교육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자녀들이 중·고등학생인 40대 중·후반 여성 직장인은 회사에 ‘올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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