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동력 못찾은 경제
저성장→양극화 악순환
고용유연화 대타협 필요
[ 오형주/임기훈 기자 ]
“투기자본 주주에 배당과 의결권 가운데 하나만 줘야 합니다.”
16일 서울대에서 열린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대논쟁’ 토론회에서 이근 서울대 교수는 ‘성장, 분배, 그리고 21세기 자본주의-월가의 포로가 될 것인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구글이 우주 개발에 뛰어들고 드론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에게 막대한 의결권을 부여하는 황금주를 허용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근 교수는 “과거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었던 재벌이 외환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를 기치로 삼는 월가(Wall Street)식 금융자본주의에 포획됐다”며 “투자보다는 배당이 미덕이라는 영미식 주주 중심 자본주의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견제하지 못하면 한국도 저성장 체제가 고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경제연구소와 동반성장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경제학계에서는 이례적으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등 좌·우파를 망라한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경제학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1997년 위기 후 한국 경제는 저생산-실질임금 정체-저성장-양극화로 요약할 수 있다”며 “기존 포드주의적 발전 국가 모델이 해체됐지만 아직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정립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낮은 사회적 신뢰 등 정신문화적 병리현상을 위기 징후로 보는 견해도 나왔다. 이영훈 교수는 한국 경제의 특징으로 자영업 등 영세사업체가 증가하는 반면 대기업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도림역 주변에서 30여개의 치킨집이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치킨집 사장들이 서로 통합하는 게 합리적인데도 동업을 가능하게 할 신뢰가 한국 사회엔 없다”고 우려했다.
금융자본주의가 재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근 교수는 “한국의 재벌은 삼성전자 사례에서 보듯 해외 공장을 늘리면서도 국내 고용을 유지하고 기술 공동화를 방지했다”며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화에 따른 주주자본주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배당 등으로 잉여이윤이 지출돼 투자율이 하락하는 비용을 치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몸체는 영미식 자본주의인데, 머리는 한국식 오너체제인 ‘하이브리드 대기업 체제’”라고 평가했다. 반면 정성진 경상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고정자본형성 비율 추이 등 지표에서 금융화나 주주자본주의에 따른 투자 둔화는 실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형기 교수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대신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안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형주/임기훈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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