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앙은행이 루블화 추락을 막기 위해 전격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근본 원인인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이 멈추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자본 유출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CDS 급등·외환보유고, 대외 채무에 못미쳐
17일 KDB대우증권과 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현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기준으로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은 33%로 추산된다.
통상 국채 부도 위험 정도를 나타내는 CDS가 급등하면 디폴트 신호로 여겨지는 데, 이달 중 러시아 CDS는 207bp 뛰어 연중 최고치(551bp)를 넘어섰다.
이승우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 33%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러시아보다 디폴트 가능성이 더 높은 나라는 베네수엘라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 국제 유가를 포함한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CDS 등 위험 지표들이 급등할 당시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은 57%였다"며 "하지만 당시 국제 유가 하락이 단기에 그친 데 반해 지금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의 수급 환경, 정치적 역학관계와 가격전쟁의 영향 등이 유가 약세를 장기화시키고 있어 러시아를 둘러싼 디폴트 우려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보다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펀더멘탈(기초여건) 측면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2분기를 기준으로 러시아의 총 대외 채무는 569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러시아의 외환보유고(4542억 달러) 대비 125%에 해당한다.
외환보유고에 경상수지 흑자액(3분기 114억 달러)을 합산하더라도 총 대외 채무액에는 미치지 못해 러시아 채무 이행 능력에 대한 우려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러시아는 총 대외 채무 금액 중에서 기업이 회사채 시장에서 직접 조달한 부채 비중이 높은 상황.
이는 정부 보증채와 달리 비보증 부채라는 특성 때문에 이 부분에서 채무 불이행이 생긴다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배성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감소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며 "이는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신흥국의 디폴트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금리 인상 효과 미지수…국제 유가 반등 '관건'
러시아중앙은행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루블화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기존 10.5%에서 17.0%로 6.5%포인트 인상했다. 하지만 달러 대비 루블화 환율은 잠깐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80루블까지 오르는 등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유가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러시아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며 "근본 원인이 유가 하락이라는 점에서 금리 인상만으로 러시아 금융 불안을 가라앉히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오히려 내수 침체 우려가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유가 급락으로 인한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화될 경우 신흥국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위험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외국인들의 '탈 이머징'(신흥국 탈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금융시장은 이미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지불유예) 당시를 떠올리기 시작했다"며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 원자재 수출 국가들, 남유럽 등의 CDS 스프레드 상승세가 뚜렷한 데 이들의 공통점은 재정 건정성이 취약한 곳"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10일 이후 엿새째 매도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오전 10시41분 현재 외국인들은 1261억원을 팔아치웠다.
이 연구원은 "국내 실물 경기 관점에서 러시아가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외국인 수급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어 증시 충격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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