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문헌보다 더 많은 역사를 말해주는 유물…이 작은 전차에 페르시아가 담겨 있다

입력 2014-12-18 21:18   수정 2014-12-19 03:50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닐 맥그리거 지음 / 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744쪽 / 4만8000원



[ 서화동 기자 ]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접경 지역의 옥수스강 근처에서 발견된 황금전차 모형이 있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의 이 황금전차 안에는 두 사람이 서 있다. 고삐를 쥐고 서 있는 마부와 그보다 몸집이 크고 멋진 무늬의 외투를 걸친 채 앉아 있는 페르시아의 행정관이다.

기원전 500~300년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황금전차 모형은 2500년 전부터 이 지역을 지배한 초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여러 면모를 전해준다.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는 현재의 이란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터키와 이집트,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이르렀다.

황금마차를 탄 행정관은 왕을 대신해 멀리 있는 영지로 시찰을 가는 중이다. 그런데 무장한 호위병이 없다는 건 공공질서가 상당히 안정돼 있음을 보여준다. 전차는 아프가니스탄 동쪽 국경지역에서 발견됐지만 금속세공 기술로 볼 때 페르시아 중앙지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마부와 승객은 이란 북서쪽에 살았던 고대 민족인 메디아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전차 앞에는 이집트 신인 베스의 두상을 새겨놓았다. 작은 전차 하나에 다종교, 다문화의 페르시아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는 250년 이상 세계에서 유물을 수집해온 영국박물관의 수많은 소장품 가운데 100점을 엄선해 인류 역사를 보여주는 기획물이다. 인류 역사의 시원부터 오늘날까지 200만년이 넘는 세월을 선사시대의 돌도끼부터 현대의 신용카드와 휴대용 발전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을 통해 재구성한다. 역사학, 고고학은 물론 과학, 인류학의 지식과 정치가, 조각가, 시인, 종교인, 언론인 등 전문가들의 코멘트, 유물이 만들어진 현지 사람들의 증언까지 곁들여 더욱 풍성하게 의미를 담아낸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돌찍개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든 최초의 물건 중 하나다. 도구를 만들면서 인간의 두뇌는 비대칭으로 성장해 진화를 거듭했고, 세계로 퍼져갔다. 1835년 이집트 테베에서 출토된 ‘사제 호르네지테프의 미라’는 이집트 사회와 신앙, 교역, 기술 수준, 세계관을 생생하게 알려줬다. 미라 제작에 쓰인 재료를 분석한 결과 관의 표면에 칠해진 역청은 북쪽으로 수백㎞ 떨어진 사해 지역에서 교역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된 ‘새 모양 절굿공이’와 마야의 ‘옥수수 신상’은 1만년 전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인류가 농경과 정착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 유물들은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 주요 국가뿐 아니라 작은 부족과 원주민 문화를 망라한다. 조각상, 그림, 꽃병, 의자, 금화·은화와 지폐, 고지도, 인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시아 유물로는 중국 주나라의 제기, 청동종, 한나라 칠그릇, 당나라 무덤인형, 일본의 청동거울 등과 함께 서기 700~800년께 통일신라기에 만들어진 기와를 영국박물관 대표 유물 100선에 포함시켰다. 이 한 장의 기와를 통해 저자는 통일신라가 수도 경주를 새로 지은 웅장한 기와건물들로 치장했으며 용 문양으로 악귀와 악령을 물리치려 했다는 점, 통일신라기가 한국 역사에서 건축과 문학, 천문학과 수학의 황금기를 구가한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문자기록이 전해주는 역사 정보는 명료하지만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유물은 덜 명료하지만 훨씬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물론 그 정보를 읽어내려면 다양한 학문 지식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 책은 유물에 담긴 방대한 정보를 어떻게 찾아내고 재구성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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