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사에 남을 맨큐 - 피케티 논쟁, 맨큐가 옳았다

입력 2015-01-05 20:48   수정 2015-01-06 06:04

새해 미국에서 벌어진 뜨거운 논쟁이 주목된다.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에서 진행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열띤 토론이 그것이다.(본지 1월5일자 A1, 10, 11면 참조) 지적이면서 생산적 논쟁이어서 부러움이 들 정도다. 사회발전을 향한 지식인들의 엄격한 상호 비판과 진지한 자세가 드러난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맨큐 교수의 냉철한 분석이다. ‘맨큐의 경제학’ 저자로 유명한 그의 논리와 주장은 단지 피케티에 대한 비판 차원을 넘어선다. “자본의 축적은 필연적으로 자본소득 증가와 불평등 심화로 귀결된다”는 피케티의 가설은 지난해 가히 선풍적이었다.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90%를 넘나드는 누진적 소득세와 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피케티식 선동은 이번 포럼에서도 되풀이됐다.

불평등이나 양극화 문제가 곳곳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처럼 막연한 평등주의가 너무도 쉽게 정치구호로 둔갑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극적인 논쟁거리다. 그러나 맨큐는 “생산에 기여한 대가가 바로 불평등”이라고 진단했다. 각자, 또는 각 그룹이 생산에 기여한 바에 따른 결과가 바로 격차라는 지적에 차가운 이성의 힘을 느끼게 된다. “자본의 축적과 윤택한 삶을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는 비판도 지극히 합리적이다.

과학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본은 더 축적돼왔고 소득도 전반적으로 증가해왔다. 누구도 부인 못 할 사실이다. 피케티는 이 과정에서의 격차에 주목한 반면 맨큐는 윤택한 삶을 왜 문제 삼으며, 왜 두려워하느냐고 지적했다. “가난하면서도 평등한 사회보다는 부자가 될 기회가 있는 불평등 사회를 사람들은 더 원할 것”이라는 맨큐의 주장 또한 지극히 이성적이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가 줄줄이 실패한 20세기 인류사가 증명하는 바 그대로이며 역사적 이성이다. 사람들이 불로소득 같은 부당한 이득에 반대할 뿐, 부의 불평등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나, 자본 소득의 증가가 반드시 부의 세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도 논리적이다.

맨큐만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의 실체를 직시해왔다. 불평등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도 그렇다. 그는 “불평등은 성장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성장과 진보를 이끌어낸다”고 갈파했다. 불평등 구조가 왜 생겨났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들이다.

올해 소득 3만달러를 찍는다지만 우리 사회도 물론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만악의 근원인 양 불평등 문제를 정치적 선동의 구호로만 활용할 수는 없다. 불평등 해소도 경제발전도 다 놓친다. 무엇보다 결과일 뿐인 불평등을 원인으로 몰아선 안된다. 미국경제학회를 보며 미국 사회의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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