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 논란

입력 2015-01-09 21:08   수정 2015-01-10 05:45

[ 오상헌/임도원 기자 ]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진이나 최대주주 등에게 보유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유가 차등의결권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서다. 지분율이 7%에 불과한 마윈 회장이 알리바바 상장 후에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가지려면 경영진에 주당 통상 10~100개의 다수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도입된 증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재계는 많은 기업인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 외부 자본을 조달하면 지분율 하락으로 경영권이 약화될 수 있다며 꼭 필요한 투자 유치마저 꺼린다고 주장한다.

반론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무능한 경영진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악용해 경영권을 장악, 회사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가 2~3세에게 회사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차등의결권제 도입에 대해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가 찬성론을, 윤승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이 반대론을 폈다.

찬성 - 지분율 하락은 곧 경영권 위협…좋은 투자유치 기회 놓칠수도

中 알리바바, 美 증시로 간 이유도 차등의결권

외신들은 작년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라바바가 미국 증시로 간 이유로 차등의결권 제도를 지목했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효율적인 경영권 방어수단 중 하나지만, 국내에서는 ‘1주=1의결권’ 원칙에 막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기업인에게 충분한 돈이 없다면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인은 회사를 증시에 상장시킨 뒤 자본시장을 통해 돈을 조달한다.

적절한 투자를 통해 회사가 성장하면 그 과실은 사회 전반으로 흘러들어간다.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고, 일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소비를 한다. 배당을 받은 투자자 역시 시장에 돈을 푼다. 결국 적절한 투자와 이에 따른 기업의 성장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기업인이 회사를 키우기 위해 외부 자금을 끌어들일수록 자신의 지분율은 떨어진다는 데 있다. 1주=1의결권 구조에서 최대주주의 지분율 하락은 경영권 위협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좋은 조건에 투자를 제의해와도 지분율 하락 부담에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차등의결권은 박근혜 정부의 화두인 ‘창조경제’를 꽃 피우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창업가들이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투자금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외부 자금을 많이 끌어들일수록 창업가들의 지분율은 떨어지고, 반대로 외부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커진다. 경영권 안정을 위해 외부 투자 규모를 줄이면 성장의 속도는 더뎌지게 된다.

창업가에게 차등의결권을 준다면 이런 문제는 단번에 해결된다. 창업가는 자신의 뜻대로 회사를 이끌 수 있는 경영권과 충분한 자금을 움켜쥘 수 있고, ‘될성부른 나무’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훗날 최대치의 과실을 거두게 된다.

소프트뱅크가 경영권을 가질 수 없는데도 알리바바 지분 34%를 사들인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펀드, 연기금 등 전문 투자자들의 투자 목적이 ‘소유’에서 ‘이익 추구’로 바뀐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선진국들은 이런 변화를 인식하고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구글의 경우 창업자 지분은 15% 정도지만 의결권 비중은 56%에 달한다. 포드자동차 벅셔해서웨이 뉴욕타임스 등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도 차등의결권을 받아들였으며, 싱가포르는 지난해 10월 회사법을 개정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세계적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알리바바 유치에 실패한 홍콩 역시 차등의결권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일부에선 차등의결권 제도가 경영진의 전횡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한다. 이런 문제는 경영진이 차등의결권을 악용할 수 없도록 상장규정을 정비하는 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예컨대 의결권을 연차별로 가중하는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은 기업에는 장기적 경영전략 수립과 신뢰도 제고, 주주에게는 장기투자에 대한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제 한국도 왜 경제 선진국들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주식회사의 개념이 바뀐 글로벌 트렌드를 부정하면 한국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를 통한 경제 발전 역시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 - 무능한 경영진에게 피난처 제공…한국 지배구조에선 맞지 않아

美서 반대움직임 커져…장기적 성과도 낮아

차등의결권 제도의 국내 도입은 결론부터 말하면 시기상조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무능한 경영진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우려가 크다. 적대적 기업인수 가능성은 무능한 경영진의 회사·주주 가치 감소 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다면 교체돼야 할 대상인 무능한 기존 경영자가 이를 악용해 참호를 파고 그 속에 숨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최근에 발표된 미국 투자자책임연구센터(IRRC)의 보고서에 따르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단기적으로는 높은 성과를 보였으나 3년 이상의 장기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낮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에서는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상장회사가 차등의결권 제도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은 피라미드형 주식소유나 상호출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에서도 상장회사의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하는 국가가 적지 않지만 순환출자 또는 피라미드형 지배구조와 차등의결권 제도를 동시에 허용하는 법제는 많지 않다. 이와 같이 차등의결권 제도에 대한 입장은 각국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피라미드 및 순환출자형 지배구조가 보편적인 한국과 단순 비교해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법이다.

세계적으로 차등의결권 제도에 반대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움직임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아시아지배구조협회(ACGA)는 차등의결권 제도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전원이 주주 간 평등대우가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98%는 차등의결권 제도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홍콩 증권시장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면 시장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1%에 달했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퍼스(CalPERS)도 차등의결권을 유지하는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기관투자가협의회(CII)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 상장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면을 발송하기도 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기업이 감소하는 추세도 나타난다. 캐나다 토론토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곳은 1993년 163개사(14%)에서 2010년 83개사(6%)로 줄었다. 미국 그루폰은 2016년에 차등의결권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초기 창업자가 장기적인 비전으로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소수의 지분으로 전체 회사를 지배함으로써 회사보다 경영진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주주의 경영 참여를 차단하는 단점도 있다. 특히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2세 또는 3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차등의결권 제도는 약보다는 독이 될 확률이 높다. 순환출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가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우리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오상헌/임도원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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