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좌동욱 지음 / 한국경제신문 / 304쪽 / 1만5000원
[ 송태형 기자 ] ‘무(無)에서 10년 만에 50조원으로.’
2004년 12월 첫발을 디딘 한국형 사모펀드(PEF) 시장의 성장사는 이렇게 요약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규에 걸맞게 이제 사모펀드를 빼놓고 산업 지형도를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 수조원대에 달하는 기업 인수·매각을 주도하는 사모펀드 주역들은 어느덧 국내 자본시장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사모펀드는 또 과감한 성과보상을 무기로 금융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1조 원의 승부사들》은 지난 10년간 국내 사모펀드 주역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담아낸다. 한국 사모펀드 태동기부터 주요 M&A(인수합병) 현장을 지켜본 저자들은 “사모펀드의 세계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냉혹한 승부”라고 표현한다.
오비맥주를 AB인베브에 팔아 단 한 건의 거래로 4조원의 차익을 거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를 비롯해 승자들은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패배의 상처도 숱하다. 2005년 당시 최대 ‘토종’ 사모펀드로 출범한 보고펀드가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했다가 실패, 인수 과정에서 끌어다 쓴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명멸해 간 사모펀드 운용사들도 숱하다.
저자들은 국내 사모펀드의 역사를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 변양호 보고펀드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송인준 IMM프라이빗에쿼티 사장, 임유철 H&Q AP코리아 사장 등 사모펀드 주역들과의 생생한 인터뷰를 기초로 풀어냈다. 기업 재무 임원들을 비롯해 국민연금 등 사모펀드 출자 기관과 은행·증권 투자금융 담당자들 수십명도 인터뷰했다. “경영학과 학생들을 포함해 사모펀드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케이스 스터디’ 자료를 제공하고 싶었다”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사모펀드 실무 현장에서 나오는 복잡한 용어와 개념도 실제 거래 사례 속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다.
‘토종 사모펀드 10년’은 국내 기업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수조원의 ‘실탄’을 무기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사모펀드와 기업의 ‘동거’도 흔해졌다. 현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기업 집단이 사모펀드에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빈번해지면서다.
보고펀드와 LG실트론의 사례처럼 분쟁으로 파국을 맞기도 하고, 한라그룹이 H&Q와 함께 외국계 사모펀드로부터 만도를 되찾아 온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도 하는 등 결말은 제각기 달랐지만 기업들은 사모펀드를 ‘무시할 수 없는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최근 들어 사모펀드를 기업 구조조정의 촉매제로 활용하려고 하면서 기업과 사모펀드의 동거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저자들은 “향후 10년은 사모펀드로 상징되는 ‘월스트리트 룰(미국식 자본주의)’이 한국의 기업 문화와 접목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기업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던 이들이 사모펀드가 투자한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로 이동하는 등 대기업에 집중됐던 인재 쏠림 현상도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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