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뚝뚝 떨어지는데…
[ 노경목 기자 ]
지난 14일 세계경제는 한 금속 가격 때문에 크게 요동쳤다. 주인공은 생글생글 독자 여러분도 생활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리다. 이날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를 3개월 먼저 사고팔 수 있는 구리 선물(先物) 가격은 5.2% 하락해 t당 5548달러까지 내려갔다. 올해 들어서 11.3% 떨어진 가격이며 2011년 2월 구리값이 비쌌을 때를 기준으로는 60%가량 하락한 것이다. 이날 갑자기 구리가 떨어진 이유는 뭘까. 구리값이 떨어지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그 전에 도대체 구리값이 무슨 의미가 있길래 다들 난리일까.
‘닥터 구리’가 중요한 이유
구리는 건축, 전자제품, 자동차, 배 등 웬만한 산업 생산품에 모두 들어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자동차에만 해도 한 대당 20㎏의 구리전선이 들어가는 등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제품에는 모두 구리가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이는 열과 전기를 잘 전달하는 구리의 특성 때문이다. 실온에서 구리는 은을 제외하고 가장 전기 전도율이 높은 금속이다. 은의 가격이 금속 중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구리는 부품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의 금속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산업 생산이 늘면 구리 수요가 늘어 구리값도 오르고 산업생산이 줄면 구리값은 떨어진다. 구리를 미리 살 권리를 사고파는 선물값이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표로 기능하는 이유다. 경기가 좋아져 구리값이 올라갈 거 같으면 지금 가격에 3개월 뒤 구리를 매입할 수 있는 선물값이 올라가고 반대라면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때문에 구리는 경기를 항상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이유로 ‘닥터(박사)’라는 별명이 붙어 ‘닥터 구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경기 둔화 우려에 떨어진 구리값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하면 이번에 구리값이 급락한 이유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구리값이 하락한 이유도 세계 경기 둔화 우려와 관련이 있어서다.
우선 세계 구리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전망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7.4%에 머물며 1990년 이후 2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한 중국 경제는 올해에도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BNP파리바 등 투자은행들은 2015년 중국 성장률이 6.8%까지 주저앉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성장률도 비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성장률이 3.5%에 머물 것으로 전망해 지난해 10월 3.8%였던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경기 둔화로 구리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가격 하락을 예상해 선물 시장에서 구리를 대거 매도하면서 가격 낙폭이 커졌다”며 “원자재 시장이 하락장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국제 유가도 충격을 줬다. 유가 하락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내리면서 구리값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스즈파코우스키 시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에너지의 가격 붕괴가 다른 상품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른 원자재값도 도미노 하락?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을 반영한 구리 가격 폭락은 다른 원자재로 전이되고 있다. 구리값이 급락한 14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알루미늄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0.4% 하락한 t당 1783.75달러를 기록했다.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니켈 가격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납 가격 역시 3.4% 떨어진 t당 1766.50달러를 기록했다.
구리 가격 폭락은 미국과 유럽 증시에도 타격을 줬다. 구리 생산 업체들의 주가가 낙폭이 컸다. 이날 유럽 증시에서 다국적 광물업체 클렌코어 주가는 9.3% 급락했고, 미 증시에서도 글로벌 최대 구리 및 금광개발 업체 프리포트맥모란의 주가가 11.7% 떨어졌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주식시장마저 타격을 받으면서 투자자들은 가격 변동이 적은 안전자산에 몰리고 있다. 특히 국가가 책임 지고 돈을 빌리는 국채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30년 만기 국채의 이자는 사상 최저인 연 2.3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국채 이자는 국채를 원하는 투자자가 많으면 떨어지고 적으면 올라간다. 캐나다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 역시 2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의 국채금리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해당 국가가 국채를 매입해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려준 사람이 국채를 갖는 조건으로 국가에 보관료를 지급하는 셈이다.
더그 카스 시브리즈파트너스 전략가는 “유가, 구리값, 국채 가격 모두 글로벌 경제 둔화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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