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플레 우려 겹쳐
상대적 절상 막기 안간힘
너도나도 돈 푸는 亞
인도·터키 기준금리 내려
日엔화 가치 8년래 최저
주요 통화, 달러 대비 15%↓
[ 김은정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의 ‘바주카포’(대규모 양적 완화)로 촉발된 유럽 국가들의 통화 전쟁이 아시아 국가로까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가치 상승에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글로벌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아시아 중앙은행들도 앞다퉈 통화정책을 완화함으로써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강(强)달러로 주요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잇따라 완화하고 있다”며 “성장을 촉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자국 통화의 절하라는 판단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싱가포르까지 통화 절하 용인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은 28일(현지시간) 예정에 없던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싱가포르달러의 절상 속도를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싱가포르달러 가치는 전 거래일 대비 1% 이상 떨어졌다. 2010년 9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싱가포르가 통화정책 완화 행렬에 동참한 것”이라며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장기불황으로 이어질 수 있어 자국 통화 절하가 시급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싱가포르는 작년 11월부터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날 발표에서도 “작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세가 물가상승률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이번 조치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 우려에 유가 급락에 따른 물가 하락, 자국 통화의 상대적인 절상 등을 방어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통화정책을 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도 이미 작년 11월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올 들어서도 대규모 유동성을 풀면서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투자 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중국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역시 작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유동성 확대 정책을 쓰고 있다. 엔화 가치도 달러화 대비 8년 만에 최저로 내려 앉은 상황이다. 인도와 터키도 기준금리를 이미 내렸으며 추가 인하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변동성만 키울 수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지난 22일 대규모 양적 완화 시행을 결정한 이후 연내 유로화 가치와 달러화 가치가 같아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아졌다. ECB의 조치를 전후로 주변 국가 중앙은행들도 발빠르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환율 방어 정책을 포기했고 캐나다와 덴마크는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호주와 뉴질랜드 중앙은행도 기준금리 인하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46개 국가 중 3분의 1 이상이 최근 6개월 이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BoA는 “선진국의 75%가량이 1%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다만 각국의 경쟁적인 자국 통화 절하가 글로벌 외환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높여 무역 거래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특정 국가가 통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고 해도 무역 상대국 역시 자국 통화 절하에 나서면 결국 아무런 효과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며 “통화 전쟁에 참여한 대다수 국가는 스스로 갖고 있는 정책 수단을 모두 소진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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