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稅없는 복지' 수술대 올랐다

입력 2015-02-03 22:17   수정 2015-02-04 04:04

유승민 이어 김무성 "국민 속이는 것"
朴 공약 정책 정면비판

복지·증세 놓고 黨·靑 '정면 충돌' 양상



[ 정종태 기자 ]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수술대에 오를 조짐이다. 연말정산 ‘세금 폭탄’ 논란과 지방세율 인상 번복 소동으로 증세 논란이 다시 점화됐을 때도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증세는 현 정부의 기조가 결코 아니며 다른 방법으로도 복지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점차 고립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로 짜인 여당 지도부가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나서면서다. 수많은 재정전문가와 언론·학계가 일찌감치 문제를 제기한 증세 없는 복지에 여당까지 가세하면서 당·정·청의 전통적 협력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이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증세 없는 복지의 깃발을 내리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유 원내대표 역시 전날 취임 일성으로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지도부의 ‘투톱’이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증세 없는 복지 정책 기조를 정면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정부의 증세와 복지를 둘러싼 정책 방향은 어떤 형태로든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여권 한 관계자는 “정책 주도권을 가진 여당이 돌아섰다는 것은 더 이상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라며 “정부는 복지를 수술하든지, 아니면 세율 인상에 나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여권 기류 변화에도 청와대의 태도는 완강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엄밀히 따져 증세란 세율 인상과 세목 신설을 의미하는데, 현 정부에서는 두 가지 모두 추진하지 않겠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당 지도부가 ‘증세 없는 복지’ 수정론을 들고 나선 것에 대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비과세·감면 축소 등 세수 확충 노력과 세출 구조조정으로도 현 정부의 선택적 복지는 가능하다는데 왜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당과 청와대 입장이 이처럼 상반되면서 향후 복지와 증세 정책을 놓고 정면충돌이 불가피해졌다. 당과 청와대는 무엇을 증세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에서부터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복지와 세부담 수준을 둘러싸고 ‘저부담-저복지’로 갈 것인지, ‘중부담-중복지’ ‘고부담-고복지’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당과 청와대 해법이 다른 것은 물론 당내에서도 견해가 제각♣甄?

김무성 대표는 이날 “세금을 덜 내고 낮은 복지 수준을 수용하는 현재의 ‘저부담-저복지’를 유지할 것인지, 세금을 더 내고 복지 수준을 높이는 ‘고부담-고복지’로 갈 것인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경우에 따라 ‘고부담-고복지’로 갈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대표는 복지 수준에 대해서도 ‘구조조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비해 유승민 원내대표는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하며,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필요할 경우 증세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도 ‘중부담-중복지’ 원칙을 내세우며 “법인세는 물론 근로소득세·부가가치세 모두 백지에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정당이 증세 문제와 관련, ‘최후 보루’로 여기는 법인세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여당의 한 정책통 의원은 “지금부터 복지와 증세 문제는 일회적 논란 단계를 넘어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전면적인 논쟁 국면으로 들어섰다”며 “경우에 따라선 집권 3년차를 맞아 정책 기조의 대폭적인 방향 수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벌써부터 당 내부에서는 복지와 증세 문제 공론화를 위한 ‘국민 대타협 기구’ 설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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