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증권 발행 100억유로 증액 요구도 거부
시중銀 자금난 심화…유로화 장중 1.3% 하락
[ 김순신 기자 ]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국채의 담보 자격을 박탈하며 그리스 은행권의 돈줄 조이기에 나섰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를 돌며 채권 교환을 통한 채무 재조정 방안의 ‘우군’을 확보해 오던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그리스 길들이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부의 사실상 채무 감축 요구가 구제금융을 제공한 ECB,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의 강력한 반대를 돌파할 수 있을지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CB, “그리스에 더는 특혜 없다”
ECB는 4일(현지시간)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한 은행의 대출 승인을 오는 11일부터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스 국채는 투기 등급이기 때문에 ECB가 은행에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받을 수 있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ECB는 2010년 5월부터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가능성이 높아지자 예외적으로 그리스 국채를 담보로 받아줬다.
ECB는 “ECB 정책위원회가 그리스 긴급구제 프로그램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며 “현행 유로시스템 원칙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ECB는 그리스 정부의 재정증권 발행 한도 증액 요구도 거부했다. 그리스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고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단기 재정증권 발행 한도를 현행 150억유로(약 18조7000억원)에서 250억유로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마크 그랜트 사우스웨스트증권 이사는 “이번 조치가 바루파키스 장관과 드라기 총재가 만난 지 수시간 만에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시리자 정부에 대한 ECB와 EU의 실질적인 복수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피터 부크바 린지그룹 수석 애널리스트는 “이번 소식은 예금자의 공포를 자극해 뱅크런(대규모 자금 인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그리스 은행들이 ECB의 긴급대출프로그램(ELA)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유동성 부족에 직면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독일 설득이 급선무
ECB의 강경 조치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유로화 가치는 장중 한때 전날보다 1.3% 하락했다. 그리스 주식시장과 연계된 ‘글로벌X FTSE 그리스 20 상장지수펀드(ETF)’는 10.4% 급락한 11.9달러에 거래됐다.
블룸버그통신은 “ECB가 재정증권 추가 발행을 금지함에 따라 다음달 그리스의 외환이 고갈될 것”이라며 “시리자 정부는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유로존을 탈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전망했 ?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그리스 정부는 유럽 파트너들과 맺은 기존 협의를 준수하지 않으면 파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IMF와 독일을 설득해야 ECB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부크바 애널리스트는 “그리스가 ‘트로이카(EU ECB IMF)’와의 협상에서 합의를 도출한다면 이번 조치가 철회될 것”이라며 “그리스 최대 채권국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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