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눈동자, 히말라야 만년설처럼"…롯데홈쇼핑, '엄홍길 휴먼스쿨' 기공

입력 2015-02-06 17:20   수정 2015-02-06 17:23


푸룸부에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탔다. 트럭 같은 버스로 갈아타 지그재그로 꺾이는 산길을 따라 12시간. 하도 심하게 덜컹거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길이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가파른 산길을 4시간 걸어 올라갔다. 산악인 엄홍길씨와 롯데홈쇼핑 직원 20 여 명으로 구성된 ‘프룸부 원정대’는 이렇게 지난달 29일 히말라야산맥 동쪽 끝 마을 푸룸부에 도착했다. 12번째 ‘엄홍길 휴먼스쿨’ 기공식을 하기 위해서였다.오는 데만 3박4일이 걸린 것이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푸룸부 마을 이장이 엄대장과 일행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줬다. 푸룸부 학교에 다니는 30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좌우로 길게 줄을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한국에서 온 ‘푸룸부 원정대’를 반겨줬다. 아이들은 모두 호기심이 가득 찬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부끄러운 듯 웃으며 두 손을 합장했다.

“나마스테!” 엄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자 푸룸부 학교 운동장을 가득 메운 학생들과 주민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엄대장은 “칸첸중가는 사연이 많은 곳입니다. 3번째 도전 끝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과ㅏ【?동료산악인과 형제와도 같은 세르파를 잃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해발 8,500m 영하 20도에서 10시간을 매달린 채 밤을 지새며, 이젠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살아있었습니다. 다시 정상에 오르며 히말라야의 신께 약속했습니다. 정상을 허락해준다면 히말라야에 보답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푸룸부 엄홍길휴먼스쿨을 후원한 롯데홈쇼핑의 서용운 상무는 인사말에서 “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한 청소년들이 미래에 네팔을 발전시키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푸룸부 학교 교사 거네드라는 “열악한 시설로 고등학교 1학년 과정 까지만 가르치는 푸룸부학교에 새 교사가 들어서게 되면 나머지 고2,3 과정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공식이 끝나자 축제가 시작됐다. 푸룸부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우리의 사물놀이와 비슷한 가락에 맞춘 아이들의 공연에 온 마을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로 하나가 됐다. 마지막엔 한국에서 온 모든 일행과 마을 주민들이 한데 어루러져 춤을 췄다. 엄홍길 대장 주변은 기념촬영을 하려는 주민들로 붐볐다.

한바탕 잔치가 끝나고 어둠이 몰려왔다. 우리 일행은 교실에 마련된 잠자리로 들어갔다. 전기가 안 들어와 랜턴으로 교실을 비춰봤다. 교실 바닥엔 얇은 매트가 깔려 있었다. 교실엔 천정이 없었다. 양철지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양철지붕과 벽 사이는 틈이 벌어져 찬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창에 유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쇠창살 몇 개가 가로질러져 있을 뿐이었다. 엄대장은 “이정도면 네팔 고산지대 학교들 가운데 양호한 편”이라며 “더 열악한 환경의 학교도 많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정복한 엄홍길은 2009년부터 네팔의 오지에 현대식 학교 ‘엄홍길 휴먼스쿨’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인생의 지향점을 바꾼 것이었다. 엄대장은 “내가 히말라야를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산이 저를 허락한 것입니다. 동료와 세르파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학교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엄홍길이 히말라야 16좌를 오르며 10명의 동료와 세르파를 잃었다.

엄대장은 “새로운 목표는 히말라야 17좌입니다. 그것은 산이 아닙니다. 히말라야에 16개의 학교를 지어주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일행은 촛불 아래서 저녁식사를 한 뒤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찬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시간 이동에 지친 일행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햇살이 들이치자 학교 운동장 한쪽 구석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햇볕을 쬐고 있었다. 집에선 난방을 안 하기 때문에 볕으로 몸을 녹이러 나온 것이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 5도는 될 듯 했지만 아이들은 외투도 안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한동안 씻지 않아 얼굴은 때로 얼룩져 있었다. 기자가 “나마스테!” 하고 인사하자 아이들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나마스테”라고 답하며 웃었다. 차림새는 남루했지만 아이들의 눈동자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처럼 빛났다.

이날은 네팔의 공휴일이었지만 등교시간이 되자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 찼다. 롯데홈쇼핑 직원들은 페이스페인팅, 풍선으로 인형만들기, 즉석사진촬영, 캐리커쳐 티셔츠 만들어 주기 등 각종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민아 사회공헌담당 대리는 “푸룸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직원들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여러 가지 놀이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인기를 가장 많이 끈 것은 티셔츠를 나눠주는 코너였다. 거기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롯데홈쇼핑 직원들이 학생의 얼굴 캐리커쳐를 그려 넣은 뒤 학생의 이름을 써 줬다. 황수진씨는 “내가 그려준 얼굴과 한글을 보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더없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황주아씨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밝게 웃으며 살아가는 푸룸부마을 사람들을 보니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며 “내 현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엄홍길 대장은 아이들에게 긴 풍선으로 동물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줬다. 엄대장은 “네팔의 산악지대를 오가며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의 열악한 교육환경이었다”며 “교육환경을 개선해 주는 게 당장의 물질적 도움보다 네팔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해 ‘휴먼스쿨’을 짓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엄홍길 대장과 롯데홈쇼핑 직원들이 준비한 모든 프로그램은 한 나절 만에 끝이 났다. ‘푸룸부 원정대’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길이 워낙 멀고 험해 서두루지 않으면 도중에 어둠을 맞게 될지 모른다.

‘푸룸부 원정대’ 대원들이 짐을 챙겨 지프에 올라탔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다섯 대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전에 나눠준 흰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학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먼지 속에서도 반짝이며 오랫동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룸부(네팔)=신경훈 기자 nicerpeter@ha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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