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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이 기나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여의도 증권가를 둘러싼 공기도 답답하기만 하다. 증권가의 '꽃'이라 불리는 애널리스트(기업 분석가)와 펀드 매니저들의 한숨도 커져만 간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여의도를 떠나는 증권맨도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
이런 때에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뒤로 하고 여의도로 입성한 증권맨이 있어 화제다. 부사장에서 평사원이 된 이코노미스트에서 서래마을을 주름잡던 셰프 출신 애널까지, 여의도에 새 숨을 불어놓고 있는 이들을 [한경닷컴]이 만나봤다. <편집자 주>
"7년만에 다시 리서치센터로 출근하던 첫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던걸요. 책상 앞에 앉으니 '너무 좋아서' 울컥하는 기분이었달까요. 주식 좋아하고, 글쓰는 일 좋아하고 분석 좋아하는 제게 이것보다 더 좋은 직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위치한 KTB투자증권의 리서치센터에는 '연구원' '수석 연구원'이라는 일반적 호칭 대신 '박사님'으로 불리는 이가 한명 있다.
이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물론 여의도 증권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나이 많은 최고령 애널리스트인 김한진 연구원(56)을 부르는 호칭이다.
리서치센터의 수장인 센터장보다 나이가 많은 그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담아 후배 연구원들은 그를 "김 박사님" 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 오직 글쓰고 분석하는 일 행복
김 연구원은 1986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로 입사해 1998년 리서치센터장에 올랐다. 이후 운용업계로 자리를 옮겨 삼성자산운용 리서치를 맡아 이끌다 피데스증권(현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는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을 역임했다.
증권가에 몸담은 지 올해로 30년이 되는 그는 2013년 3월, 부사장에서 평직원이 되는 모험을 감행했다. 애널리스트를 그만 둔 지 7년 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것이다. 관리자가 아니라 현역 애널리스트로서 경제를 분석하고 전망하고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초창기인 1990년대 초반, 일반 마루산증권으로 단기 연수를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마루산증권에서 오랜 경력을 가지고 센터장도 거친 뒤 다시 전문가로 활동하던 애널리스트들을 보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저도 나이 들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KTB투자증권에서 그 꿈을 이룬거죠."
현재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그가 하는 일은 기업 분석을 하는 섹터(종목)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이코노미스트(경제 분석가) 혹은 스트래티지스트(투자 전략가)에 가깝다. 거시 경제 전반을 분석해 증시 흐름을 전망하는 게 주된 업무.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경력 30년 이상의 나이 지긋한 이코노미스트(스트래티지스트)가 적지 않다. 미국 월가의 '비관론자'로 유명한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1982년부터 2007년까지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 연구원 시절까지 합치면 30년 가까이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한 셈이다.
김 연구원은 이코노미스트의 경우 경제의 빅 사이클과 트렌드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오랜 경험과 연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는 물론 국내외 다양한 변화들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숙련 기간이 섹터 애널리스트에 비해 더 길다는 설명이다.
"연륜있는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의 다양한 히스토리를 알고 몇 번의 사이클을 경험했기 때문에 깊이있게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녔죠. 의사로 따지면 수많은 임상경험을 가진 거니까요. 물론 과거에 얽매여서 자신의 경험만을 믿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단점도 있죠.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경쟁우위에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 증시 출렁해도 '긍정론' 잃지 않아
오랜 경력만큼 어지간한 증시 충격에는 동요하지 않는 그다. 최근 국내 증시가 3년 넘게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세계 경제도 여러 변수에 노출돼 있지만 김 연구원은 긍정론을 잃지 않는다.
우선 국내는 기업들의 기초 체력이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단단해진터라 올해 상황이 나쁘다 하더라도 대규모 감익이나 적자가 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유럽의 경기 부양 기조가 유지되면서 유동성 장세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제 유가 하락이 올해 실물 경제에 본격 반영되면서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경제와 증시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어려운 시장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증권가를 떠나는 후배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64개 증권사에 소속돼 활동 중인 애널리스트는 1160여명으로 1년 전보다 12% 넘게 감소했다. 애널리스트 숫자가 줄다보니 이들이 내는 분석 보고서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애널리스트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직업입니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자기 이름을 걸고 보고서를 작성해서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직업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물론 상황이 힘들어 다른 선택을 할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버텨야죠.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설겆이만 3년 해도 웃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도 1997~1998년 외환위기 당시 견디기 힘들 정도의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다. 그때는 나라가 당장 망할 것 같았고 기업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으며 증시는 하염없이 떨어졌다.
한국을 바라보는 해외 증권사들의 시선이 싸늘하던 시절, 김 연구원과 그가 몸담았던 증권사에서는 반대로 '바이 코리아'를 외쳤다. 외환위기를 겪어서 망한 나라는 아무데도 없다. 스웨덴, 영국 등 선진국도 다 마찬가지로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구조조정을 겪고 난 후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투자자들을 설득시켰다.
이 믿음대로 결국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경제와 증시 체질이 한 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실력과 운도 있었지만 '안그러면 어차피 집에 가니까 그럴 바엔 덕담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긍정론을 펼친거죠. '힘들지만 참자, 세상은 이렇게는 안망해'라고 동료 애널리스트들과 손잡고 다짐했습니다. 외환위기를 통해서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있었고, 오늘날 '가치투자' 같은 개념들도 생겨났으니 값진 경험이었죠"
◆ 장기적인 투자 문화 정착이 중요
김 연구원은 올해 세계 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 지역으로 '중국'을 꼽았다. 지난해 상해 증시의 급등에 이어서 올해까지도 이같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 모델이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하는 구조 변혁기에 중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올해도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동안은 물가 부담과 높은 집값으로 인해 적극적인 부양책을 쓰지 못했지만 이제 집값도 떨어졌고 유가 하락으로 물가 부담이 없어져 구조 변혁을 위한 경기 부양을 올해도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중국의 주가를 움직이는 건 대부분 중국 내 자금들인데 유동성이 풀리면서 금융장세, 유동성 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죠."
30년 간 변치 않는 증시 사랑을 보여준 그가 증권가에 바라는 건 한 가지다. 장기적인 투자 문화가 자리잡아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도 긴 호흡에서 보고서를 내고 이런 것들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길 바란다.
당장 내일의 주가는 못 맞추더라도 경제의 큰 흐름과 트렌드를 알면 3년 후, 5년 후 돈 벌 수 있는 종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체력'이 버티는 한 현역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오전 7~8시 사이에 출근해 저녁 8~9시까지 꼬박 분석하고 자료 쓰고 세미나를 다니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도 버겁다. 그래서 휴일엔 반드시 운동과 등산으로 체력을 관리하곤 한다.
"가끔 아내가 '힘들면 그만둬, 뭐든 내가 찾아보고 일 할게'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받는데 얼마나 행복한 건가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며 일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요. 인사권자의 결정에 달려있지만(웃음) 할 수 있는 한 좀 더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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