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소기업의 '설 보릿고개'

입력 2015-02-10 20:42   수정 2015-02-11 03:54

김정은 중소기업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 김정은 기자 ] 수도권의 한 작은 부품 제조업체 A사. 명절 때마다 직원 10여명에게 주던 상여금을 올해는 ‘생략’하기로 했다. 거래하고 있는 일부 중소기업에서 제품을 납품받은 뒤 “지금은 돈이 없다”며 대금을 주지 않아 쓸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 손에 ‘기름값’이라도 쥐어 주고 싶었으나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중국으로부터 의료기기를 수입하는 B사. 이곳 대표는 과거 사업에 실패하면서 카드론을 몇 번 썼다. 그 족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설을 앞두고 3000만원 정도 필요해 은행을 찾았으나 ‘신용등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B사가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대부업체 정도였다.

설이 다가왔지만 상당수 중소기업인들은 명절이 반갑지 않다. 거래처 대금 결제와 월급·상여금 지급 등 돈을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임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영세 중소업체들은 더하다. 명절이 최대 고비다.

일부 대기업들이 동반성장 차원에서 중소 협력업체들에 자금을 조기 집행하고 있지만 그 혜택은 일부만 받는다. 대기업과 거래하지 못하는 수많은 영세업체들은 더 힘들다.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인들이 많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판매가 줄고, 대금 회수도 제대로 안 된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808개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 자금 수요를 조사했더니 전체의 44%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어려운 원인으로는 ‘내수 부진으로 인한 매출 감소(69%)’가 가장 많았고 ‘판매대금 회수 지연(40%)’이 뒤를 이었다.

중소업체들이 느끼는 은행 ‘문턱’도 여전히 높다. 종업원이 열 명도 안 되는 영세업체들은 신용 문제로 대출을 거절당하는 게 다반사다. 부동산 등 담보 요구 관행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라지만 영세기업들엔 ‘그림의 떡’이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은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은 올해 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정은 중소기업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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