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제약·신일산업·엔씨 등 수십 곳, 올 주총서 표대결 '전운'

입력 2015-02-11 20:46   수정 2015-02-12 10:40

불 붙는 경영권 분쟁

실적악화 틈타 경영진 교체 요구 줄이어
"무능한 오너 바꿔 기업가치 높여야" 주장

기업들은 무방비…"차등의결권 도입 시급"



[ 임도원 / 오상헌 / 이유정 기자 ] 신일산업은 국내 선풍기 시장의 35%(2013년 기준)를 차지하는 업계 최강자다. 그러나 작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작년 1~9월 매출(889억원)은 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6%)을 기록했다. 영업이익(53억원) 역시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초부터 ‘슈퍼개미’ 황귀남 씨와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여파라고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황씨 측은 신일산업 주식 매집에 나서 최대주주(14.2%)보다 많은 16%로 지분율을 늘렸고 13차례에 걸친 줄소송으로 회사 경영진을 압박했다. 양측은 “경영권 방어에 회사 역량을 쏟아붓느라 사업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송권영 신일산업 대표), “주주 권익을 끌어올릴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것”(황씨 측)이라며 맞서고 있다.


○경영권 위협 노출된 기업들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기업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기업 실적이 약화된 것을 계기로 2, 3대 주주나 소액주주 연합 등이 경영진 교체에 나서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증권가에선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주주총회 시즌에 ‘표 대결’이 벌어질 상장사가 엔씨소프트, 일동제약, 신일산업을 포함해 수십 곳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이 없더라도 경영권 위협의 ‘불씨’를 안고 있는 상장사는 더욱 많다. 재계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5%에 못 미치는 120개 상장사 중 시가총액이 수백억원대 수준인 곳을 ‘경영권 분쟁 위험 기업’으로 분류한다. 2, 3대 주주나 기업사냥꾼 등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경영권을 위협할 만한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적대적 M&A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선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는 약점을 파고들어 기존 경영진이 일군 성과를 가로채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반면 “무능한 기존 경영진 대신 회사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새 주인이 오면 기업 가치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차등의결권 도입해야”

재계는 적대적 M&A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보유 주식을 털고 나가는 ‘작전세력’이나 회사 자산을 빼돌릴 목적으로 접근하는 ‘먹튀’형 기업사냥꾼에 대항할 수단은 최대주주 측에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경영권을 위협하는 ‘공격’이 들어왔을 때 기존 경영진이 가진 경영권 방어 수단은 ‘황금낙하산’ 정도밖에 없다. 황금낙하산이란 기존 경영진을 해임할 때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정관에 넣어 적대적 M&A 세력의 인수 부담을 늘리는 전략을 말한다.

황금낙하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포이즌 필’(적대적 M&A 움직임이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나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혜련 대법원 재판연구관은 한국기업법학회 주최로 11일 열린 ‘최근 회사법의 주요 쟁점의 검토’ 세미나에서 “미국, 유럽처럼 경영진에만 1주에 통상 10개의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양만식 단국대 법대 교수는 “정부의 순환출자 해소 압력과 기업의 자체적인 사업 재편으로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 우량기업이 늘고 있다”며 “포이즌 필을 통해 자국 기업이 해외 기업에 넘어가는 걸 막는 미국 일본처럼 한국도 전향적으로 도입할 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임도원/오상헌/이유정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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