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현 기자 ] 2013년 5월8일 울산지방법원. 판사가 주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방청석 여기저기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날 재판은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후 업무상 재해(폐암)로 사망한 황모씨의 유족이 “단체협상 제96조에 따라 황모씨의 자녀를 특별채용해달라”며 현대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판결이었다. 결과는 원고 패소. 즉 자녀의 특별채용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유족 채용을 보장하는 단협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다수의 취업 희망자를 좌절케 한다”며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선 노사가 합의하더라도 법률상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유족들은 항소를 포기해 그대로 확정됐다.
재판 결과를 놓고 말들이 나왔다. “유족 생계가 막막한데 법원이 너무했다” “고용세습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이 정도는 사회 통념상 용인돼야 하지 않나” 등 법원의 냉혹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보도를 한 기자들조차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은 12일자로 ‘청년일자리 뺏는 귀족노조 고용세습’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 대기업(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600여곳의 단협을 들여다 보니 세 곳 중 한 곳꼴로 고용세습 조항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황모씨의 경우처럼 유족의 생계 보전 차원이 아닌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채용’ ‘25년 장기근속자 가족 특별채용’ 등 근로자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1년9개월 전과 사뭇 달랐다. 온라인 댓글은 물론 기자의 이메일에는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재벌, 정치인 욕할 거 없네” “능력중심사회 만들겠다고? 소가 웃겠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물론 ‘노조의 고용세습도 나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가진 자들의 세습’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네티즌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노조의 생명은 상식과 도덕성이다. 스스로 고용세습이라는 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각계를 비판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백승현 지식사회부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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