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덕분에 일감 늘어난 회계사들…개정 외감법 후폭풍, 中企 '비명'

입력 2015-02-23 10:53   수정 2015-02-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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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중소기업 A사는 지난해 결산 재무제표 작성에 속이 타들어간다. 올해부터 직접 재무제표와 주석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A사 재무팀은 밤낮 없이 국내외 자회사의 실적을 검토하고 주석과 현금흐름표, 연결재무제표 등을 작성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과거에는 관행상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재무제표와 주석을 작성해줬다. 그러나 이제는 외부감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A사는 결국 임시로 회계사를 고용해 재무제표 및 주석 작성을 맡겨야 했다.

# B회계법인은 기업들의 결산을 앞두고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의 강화로 회사들이 컨설팅 요청이 늘고 있어서다. 이 회계법인은 따로 결산 재무제표 관련 팀을 만들어 기업들의 발주에 대응하고 있다.

회계사들이 알바를 뛰고 있다. 금융당국이 외감법을 개정해 '회사의 재무제표 작성책임'을 명시하고 감사받기 전 재무제표를 외부감사인 제출과 동시에 증권선물위원회에도 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재무제표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시장 신뢰도를 높이는 게 개정안 도입의 취지인데, 회계법인의 배만 불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중소 상장사들은 '시간과 비용'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올해부터 재무제표와 주석을 회사가 직접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성 과정에서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해당 회사에 대한 재무제표 작성을 지원하거나 자문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회계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어쩔 수 없이 외부감사인이 아닌 다른 회계법인에 돈을 내고 재무제표 및 주석을 작성하고 있다.

한 코스닥 기업의 재무 담당자는 "해외 자회사가 많은 제조업체의 경우 회계법인에 앞서 회사 실무자들이 재고실사에 나서는 등 업무량이 과중해졌다"며 "비용 면에서는 감사비용도 내고, 또 감사 전 재무재표 작성 비용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계법인에서 먼저 제안해오는 경우도 있다"며 "회사의 회계능력을 키우기보다는 2개의 회계법인을 쓰는 기업들이 태반"이라고 귀띔했다.

정기주주총회 6주 전에 감사 전 재무제표를 제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회계법인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당장 공인회계사(CPA)를 고용하기도 힘든 상황.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사업보고서 관련 업무의 90% 이상이 재무제표 주석 작성"이라며 "정기주총 6주 전에 사업보고서를 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어 "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주석량이 기존의 3~4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에 작성 경험이 없는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그동안 외부감사인에 상당 부분 의존을 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하루아침에 현실이 너무 버거워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기업 회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회사 뿐 아니라 외부감사인에 대한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감사 전 재무제표의 증선위 동시 제출은 기업에 부담만 제공할 뿐 실익에는 의문이 생긴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들어간 최종 보고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기업의 요청에 따라 외부감사인이 재무제표를 작성해 준 것이 기업 회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린 요인 중 하나였다면, 외부감사인의 책임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회계부정 혐의가 드러난 모뉴엘과 자회사 잘만테크는 2013년까지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적정'을 받아왔다.

한경닷컴 한민수 기자·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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