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성능 중 마력(馬力)은 5%, 토크는 3%의 응답자만이 구매에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다. 달리 해석하면 엔진 성능이 신차 구매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경쟁 차종 중 하나를 고를 때 엔진 성능을 비교한 뒤 결정을 바꾸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떤 항목이 영향을 미칠까. 실제 제품력을 구분 짓는 항목을 8개로 분류하고, 소비자 선택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50.4%가 디자인에 흔들린다는 답을 내놨다. 숫자로 표현되는 엔진 성능보다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디자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성능을 강조하는 자동차 회사들의 노력은 집요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차별화 때문이다. 비싼 값을 받으려면 제품 차별화가 필요하고, 여기에서 엔진 성능은 소비자들의 인정 여부를 떠나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 항목이라는 의미다.
또 하나는 마케팅의 한계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기계다. 성능을 숫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마력과 토크다. 그래서 메이커들은 마력과 토크를 마케팅하고 싶어한다는 해석이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들이 제품 차별화를 인정하며 지갑을 연다는 논리다. 설령 성능에 영향받지 않아도 숫자가 보여주는 매력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엔진 성능이든, 디자인이든 불변의 진리는 고가일수록 브랜드 영향력이 커진다는 점이다. 특정 제품을 선택한 소비자에게 구매 이유를 물어보면 여러 이유를 열거하지만 정작 결정은 브랜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자들의 답변은 ‘합리적 구매’라는 주변 평가를 듣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런데 브랜드의 아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결코 아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걸맞은 제품도 꾸준히 등장해야 한다. 디자인으로 통칭되는 시각은 물론 각종 스위치 조작감으로 대표되는 촉각, 심지어 후각과 청각도 만족시켜야 한다. 한 마디로 오감(五感)이 즐거워야 브랜드 인지도가 따라 오른다. 이렇게 브랜드가 정립되면 제조사의 실수가 철학으로 포장되고, 기업의 오판이 선견지명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브랜드가 마법을 부리는 셈이다.
그래서 브랜드 영향력을 높이려는 기업의 노력은 끊이지 않는다. 드라이빙센터를 구축하거나 사회공헌에 나서고, 소비자를 초청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 곧 브랜드 환상을 심어주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엔진 성능 높이기도 포함된다. 구매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지만 브랜드 가치 제고에는 일조할 수 있어서다.
최근 브랜드 마케팅의 흐름은 제품이다. 제조사보다 제품 브랜드를 높여 소비자 시선을 당기는 전략이다. 현대차 제네시스, 쌍용차 티볼리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에 ‘현대’ 로고를 배제했고, 쌍용차는 티볼리에 새로운 엠블럼을 적용했다. 굳이 기업 브랜드와 섞지 않겠다는 의지다.
기업은 기업이고, 제품은 제품으로 판단하는 게 낫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공통점은 브랜드다. 누가 뭐래도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야 하니 말이다. 달릴 곳도 없는데, 엔진 성능 높이기에 제조사가 혈안이 된 이유다.
권용주 <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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