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법은 누구의 편인가

입력 2015-03-02 20:50   수정 2015-03-03 04:14

변하는 여론 속 굳건한 헌법 가치
국가는 '진정한 국민의 뜻' 살펴야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법은 있는 자의 편이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 후 비슷한 말을 거듭 들었고, 의외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만약 이 말이 ‘법이란 본질적으로 권력이나 금력을 가진 자의 편이다’라는 것이라면 틀렸다. 그러나 ‘법이란 권력 있는 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라면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뜻을 대변함으로써 제한된 권력을 행사한다.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선거인데, 선거의 중요한 특징은 다수결로 승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다수 득표한 진영이 일정 기간 ‘집권’하며 ‘권력’을 행사한다.

국회는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는 이를 집행하는데,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다수의 지지를 통해 선출되므로 결과적으로 법률의 제정이나 집행은 다수의 지지를 받은 권력의 의사에 부합하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이해관계는 매우 다양하며 다수와 소수가 늘 분명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적으로 내기 어려운 소수도 많이 존재한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자신의 지역구민이나 지지자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늘 소수의 입장을 살펴 이들이 정치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법관을 선거로 뽑지 않는 이유는 법원으로 하여금 정치과정에 반영되기 어려운 다양한 소수 입장까지 포함해 균형 잡힌 시각에서 법을 해석·적용하도록 해 소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선거에 승리한 진영이 입법·행정권에 이어 사법권까지도 장악한 상황을 상상해본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변화하고 있는 법률과 여론 속에서 진정한 국민의 뜻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 같은 헌법적 가치가 국민의 뜻에 부합한다는 점은 확립돼 있다. 법의 해석은 이런 기본적 가치에 부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심판한다는 말은 이를 포함한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다수의 지지에 기초한 권력 행사를 자제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수까지도 배려하고, 사법부가 진정한 국민의 뜻에 따라 법을 해석·적용한다면 ‘법은 있는 자의 편’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윤성근 < 서울남부지방법원장 skyline@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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