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혁신 잃은 경제, 소비불황 깊어진다

입력 2015-03-03 20:36   수정 2015-03-04 04:30

"소비위축에 축소균형 악순환 우려
혁신제품 부재 日 장기불황 요인
제품별 새 소비자가치 개발 필요"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



가계의 소비 지출이 소득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다. 통계청의 2인 이상 가계조사에 나타난 월간 평균소득은 2004년 278만8500원에서 2014년에는 430만2400원으로 54.3%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에 월간 소비지출은 179만7300원에서 255만1100원으로 4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는 세금이나 각종 사회보험료 등의 비소비지출이 67.7% 늘어난 영향도 있으나 가계소득에서 이런 비소비지출을 제한 가처분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평균소비성향이 2004년 77.8%에서 2014년에는 72.9%로 4.9%포인트 하락한 영향이 크다.

이와 같은 소비성향의 하락은 기업의 매출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해 투자가 둔화되고 고용을 악화시키며 가계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다시 소비를 억제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각 가계가 소비를 지나치게 억제하고 흑자를 늘리는 데만 주력하면 경제 전체로는 축소균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은 1982년만 해도 평균소비성향이 79.3%(2인 이상 근로가구 기준)에 달했으나 장기蘆꼭?겪으면서 하락해 1998년에는 71.3%로 떨어졌다. 소비성향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세가 위축되고 점차 고용이 악화된 결과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근로자 소득이 감소하고 저축할 여유가 없어져 수치상으로 평균소비성향은 2014년 기준 75.2%로 다소 회복됐지만 소비 부진은 장기화되고 있다. 소비부진이 장기불황의 계기가 되고 그로 인해 투자와 고용이 위축돼 결국 근로소득마저 감소하는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서는 소비부진의 초기 단계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극심한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겪은 일본과 비교해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한국이 일본과 똑같은 장기불황을 겪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비부진을 피하기 위한 교훈을 일본 사례에서 찾을 수는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소비 부진 과정을 보면, 경제의 성숙화에 따른 소비 포화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됐다. 일본은 고도경제성장을 거치고 각종 내구소비재가 가정에 보급된 상황에서 소비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혁신 제품의 개발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전자제품의 경우 워크맨 이후 소비자를 감탄시킬 만한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장기불황기에 일본에서 개발된 하이브리드(휘발유 엔진과 전기모터 겸용) 자동차 등의 성공 사례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성과가 미진했다. 일본 기업들은 성장과정에서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크하면서 기술을 개량하는 캐치업(따라잡기)에 능숙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needs)를 창조해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기업도 공급자 중시의 사고에서 벗어?소비재뿐 아니라 생산재도 소비자 입장에서 혁신을 이루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최근의 소비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 소비자들이 해외여행 등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주는 상품에 대한 소비는 크게 늘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편의점의 간식사업이 단독가구 등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화장품 분야에서도 한방 성분 등 새로운 소비자 가치의 개발에 주력하면서 판매가 호조를 보여 중국 소비시장까지 개척하고 있다. 정책적 차원에서도 소비를 진작할 수 있는 수요 중심적 정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어떤 신기술이나 니즈의 창조가 필요한지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도를 소비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전개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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