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들이 무슨 수로 임금을 올리겠나

입력 2015-03-06 20:39   수정 2015-03-0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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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급여력 이미 고갈상태…배당 이어 임금 압력은 포퓰리즘일 뿐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라는 요구가 정부와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가 지난 4일 근로자 임금과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한 것이 시발점이다. 정치권에선 여야 가리지 않고 환영일색이다. 한술 더 떠 야당은 시급 5580원인 최저임금을 40%가량 올려 근로자 평균임금의 50%(7000~8000원) 이상 돼야 한다는 것을 거의 당론화했고 여당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최저임금이 여야 간 정치흥정으로 결정될 판이다.

불황 속에 디플레이션까지 우려되고 있다. 임금인상은 당장 솔깃한 카드일 것이다. 임금인상으로 소비여력이 커지면 내수가 살아나고 나아가 일자리가 확대된다는 꿈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추진, 아베 일본 총리의 임금인상 독려에도 고무될 만하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올해 임금인상률을 최대한 올리는 게 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올릴 여건만 되면 올려주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삼성전자 등 간판기업들조차 임금을 동결할 만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엔저, 저유가, 중국 성장둔화, 미국 금리인상 등 악재와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판이다. 더구나 한계선상의 중소·영세기업들은 인력 확보를 위해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린다. 이런 형편이니 경영자총협회가 올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1.6%로 낮게 권고하는 것으로 대신 총대를 멨다.

지금 노동시장의 문제는 임금수준이 아니다. 경직된 고용, 왜곡된 노사관계, 양극화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한다면서 무조건 임금을 올리라는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다. 자칫 대·중소기업 간,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만 키울 공산이 크다. 지난 5년간 협약임금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훨씬 앞지른다. 생산성 향상속도보다 빠르게 임금이 올라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 기준 임금은 OECD에서도 13위로 상위권이다.

최저임금도 해마다 7% 안팎 인상돼 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대폭 인상할 경우 치킨집 등 자영업 몰락을 부채질할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100% 적용이 실업을 불러온 데서 보듯이 일자리 감소도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최저임금 인상이 무슨 정의구현이라도 되는 양 밀어붙인다. 국회 계류 중인 최저임금법 개정안만 20건인데, 이 중에는 최저임금을 국회가 결정해야 한다는 법안도 있다. 최저임금에도 포퓰리즘이 판칠지 모른다.

기업들은 가만히 있어도 인건비가 급증하게 돼있다. 통상임금 확대,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이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배당을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정치권에선 법인세 인상론이 서슬 퍼렇다. 도대체 기업들이 무슨 수로 임금을 올릴 수 있겠나. 경제활성화 하겠다며 이것저것 해보다 안 되니까 기업만 닦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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