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기업에만 '통일 대박'
지멘스, 글로벌 기업 도약은 東獨기업 11곳 인수가 밑거름
잠재력 더 큰 한반도
日과 맞먹는 내수시장 생겨…건설·에너지·금융 등 큰 기회
[ 박동휘 기자 ]
독일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은 대표적인 ‘통일’ 수혜주로 꼽힌다. 동·서독이 합쳐진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2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9.5%에 달했다. 1984년 동독 드레스덴에 부품 공장을 세우는 등 미리 준비한 덕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비용 절감과 새로운 시장(동유럽) 개척을 고심한 끝에 수년 전 내린 결정이 ‘대박’으로 돌아왔다.
독일 기업 성장의 밑거름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10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연 ‘2015 세계 경제·금융 컨퍼런스’에서 이수성 롤랜드버거코리아 대표(사진)는 ‘통일 경제 미시 전략-통일시대 기업경영’을 주제로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동독 기업에 투자해 성공을 거둔 서독 기업의 사례를 거론하며 국내 기업에 ‘통일 30년 대계’를 주문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전기전자 업체인 지멘스를 ‘통일 효과’를 증명해 주는 사례로 꼽았다. 지멘스는 통일 직후 통신, 교통시스템 등과 관련된 독일 국영 기업 11개를 인수하며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덕분에 1990~1995년 매출이 연평균 6.5% 증가했다. 당시 1% 안팎이던 업계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2001년까지 12년간 지멘스의 매출 증가율은 178%에 달했다. 그해 뉴욕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기도 했다. 인프라(사회간접자본) 등 저성장 산업을 주력으로 삼던 지멘스가 총 고용 인원 34만명, 연매출 719억유로(약 87조원·지난해 기준)의 세계적인 전기전자 업체로 성장한 데 통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이 이 대표의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일 전후 동독에 투자한 서독 기업 대부분은 기업 규모를 수십배 키울 정도로 성장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는 1989~2001년 중 덩치를 38배 키웠다. 폭스바겐과 함께 독일 자동차 ‘3인방’으로 꼽히는 포르쉐와 BMW의 같은 기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각각 12%, 10%에 달했다. 이 대표는 “통일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며 “투자 관점에서 미리 준비한 기업들은 통일이 다가왔을 때 남들보다 빠른 결정을 할 수 있고, 이것이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잠재력 풍부한 한반도
‘통일 효과’라는 측면에선 한반도가 독일보다 훨씬 잠재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국내 제조업체들도 남북한 통합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중화학 공업 중심의 혁신을 이뤘던 ‘한강의 기적’을 북한에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다.
이 대표는 “일본에 못지 않은 내수 시장을 가진 경제 강국이 되는 것”이라며 “동시에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 시장에 근접한 곳에 양질의 값싼 노동력을 갖춘 생산 기지가 탄생하는 것이어서 경제 주도권을 아시아로 가져오는 데 큰 힘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건설 전력 에너지 화학 ICT(정보통신기술)업계 외에 금융업도 새로운 기회를 맞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도이치뱅크는 1989~2001년간 4배의 성장을 달성했다. 이 대표는 “흥미로운 대목은 독일 통일 이후 보험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라며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 개인 및 기업들이 대거 보험에 가입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통일이 모든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동독 국영 항공사(Interflug)는 통일 이후 서독의 글로벌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에 팔 기회가 있었으나 정부가 반독점 규제를 근거로 통합을 불허하면서 결국 청산의 길을 걸었다.
동독의 대형 국영 조선회사였던 VEB 쉬핑은 덩치가 너무 큰 게 문제였다. 5개의 조선소를 한꺼번에 살 만한 곳이 없어 쪼개서 매각했다. 이 대표는 “대규모 감원과 함께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인수한 기업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만 해도 1989~2001년 폭발적인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13년 동안 흑자를 낸 해는 단 3년에 불과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뒤에야 외형, 이익 양쪽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얘기다.
1967년 독일에서 설립된 롤랜드버거는 세계 36개국에 51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전략컨설팅 기업이다. 1990~1995년 독일 신탁관리청을 도와 동독 국영 기업과 부지, 군사적 자산 등을 민영화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엔 2012년 6월 진출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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