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양적완화에 달러화 가치 급등…신흥국 통화·원자재 시장까지 '휘청'

입력 2015-03-11 17:58   수정 2015-03-12 03:54

글로벌 경제 흔드는 강달러

달러당 유로화 가치 1.069달러로 12년만에 최저…글로벌 디플레 우려

Fed 금리인상 '가시권'…멕시코·터키 통화가치 '뚝'
미국기업 실적악화 우려에 뉴욕 증시 대규모 매도세



[ 뉴욕=이심기 기자 ]
‘슈퍼 달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물론 원유 등 상품시장과 신흥국 외환시장까지 달러 강세 여파로 극심한 변동성 장세에 휘말리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뉴욕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1.5% 하락한 1.069달러까지 밀리며 2003년 4월 이후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는 최근 1년 만에 23%, 올 들어 3개월여 만에 11% 추락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9일부터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매입을 시작, 시중에 돈을 풀면서 달러 가치 급등세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예상보다 이른 올 연말에 유로화 가치가 달러와 같아지는 ‘패리티(parity·등가)’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달러와 유로화의 가치 차이가 불과 7센트로 좁혀지면서 뉴욕 증시는 올해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미 수출기업의 실적 악화 우려가 대규모 매도세로 이어진 탓이다. 도이치은행이 강달러 여파로 S&P500지수가 최대 9%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다우지수는 이날 하루에만 1.85%, S&P500지수는 2개월래 하루 최대 낙폭인 1.70% 하락하며 지수가 지난해 말 수준보다 낮아졌다.

이날 미 중앙은행(Fed)이 상반기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지면서 달러 강세 현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8일 끝나는 3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의 선제적 지침(가이던스)을 수정, 그동안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인내심’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서 금리 인상의 장애물을 제거할 것으로 보도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신흥국은 외환시장에서 충격을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이날 하루 만에 2.29% 내린 달러당 12.36랜드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멕시코 페소와 터키 리라화 가치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브라질 헤알화는 29%, 남아공 랜드화는 14%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Fed가 긴축을 시작하면 신흥국 투자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취약한 브라질, 멕시코, 터키, 남아공 등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유와 금 등 달러표시 가격으로 거래되는 원자재 시장도 강달러 여파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글로벌 디플레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원유(WTI) 4월 인도 선물가격은 전날보다 3.34% 하락한 배럴당 48.39달러로 밀렸다. 금 가격도 온스당 1160.60달러로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급격한 슈퍼 달러 현상이 글로벌 경제는 물론 미국에도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강달러가 경기 회복 효과는 없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만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이슨 퍼먼 미국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도 “강달러로 미국 경제가 역풍에 직면해 있다”며 “특히 저유가로 인한 혜택을 상쇄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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