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누구나 가는 곳이 산이다. 근교의 산은 입장료도 없고 어디라도 사람이 많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친구라도 만나 막걸리에 파전이면 하루가 편하다. 그러나 은퇴 직후 프로그램으로 나홀로 등산은 권할 만하지 않다. 중장년이 돼 산에서 만나면 이제까지 살아온 실적과 영광은 사라지고 다 같은 처지가 된다. 회한만이 더 많아질 뿐이다.
산이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차라리 당구장을 갈 일이다. 당구는 비교적 싸게 즐길 수 있는 장점뿐만이 아니라 실력이 늘어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스포츠’다. 요즘은 당구 전용 텔레비전이 생겨 토브욘 브롬달 같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도 있다.
당구는 나이가 들수록 실력이 나아지는 몇 안 되는 운동 중 하나다. 각도를 계산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운동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20대 때 당구공이 잠잘 때 천장에서 왔다갔다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운동이었다. 많을 땐 전국에 4만개의 당구장이 있었을 정도다. 특히 재닛 리 등의 포켓볼이 유행할 때가 전성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구장이 약 2만개로 줄었다.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일까. 맞는 말이지만 원인은 당구장끼리의 경쟁이 아니었다. 바로 노래방, PC방, 실내 골프게임장 등이 경쟁 대상이었다. 중장년들은 당구장 대신 산으로 떠났다. 이런 대체재들에게 당구장은 손님을 빼앗긴 것이다.
당구장만의 매력이 있는데도 왜 사람들은 떠나고 있을까.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당구장이 가족 또는 연인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남자들만의 공간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나 아이들, 애인이 같이 갈 수 없는 마초공간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담배였다. 당구장은 지난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으로 실내공간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는데도 흡연이 가능했다. 개정법에 따라 스포츠시설도 금연하게 됐지만 1000㎡ 이상의 큰 공간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상당수 당구장이 이대로는 위기라며 금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 시책이 바뀜에 따라 올해 들어서는 대부분 당구장이 금연으로 바뀌고 있다. 공기가 맑아져야 아이들 손잡고 할아버지가 올 수 있는 가족공간이 되는 것이다. 여기다 휴게공간을 조금만 더 늘리고 PC나 태블릿을 비치해 놓으면 당구장은 전혀 다른 비즈니스 및 오락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사실 당구는 세계 대회가 열리는 공식 스포츠다. 적성 있는 학생들이 특기를 살려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세계 유수대학에 유학도 갈 수 있는 유망 종목이다. 은퇴하면 나는 산이 아니라 당구장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친구를 만나고 좋은 사람을 소개받고 같이 당구를 즐기며 새 사업을 얘기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생각이다. 대학시절 200까지밖에 못 올린 내 평균 점수도 올리고 1000당구, 2000당구 같은 전설의 실력자들도 만날 것이다. 일상 속의 정해진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내는 상상력의 게임을 즐길 것이다.
권영설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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