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정 기자 ]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들이 투기등급 채권 등 위험자산 투자를 늘리고 있다. 투자 성향이 보수적인 국부펀드와 보험회사도 신흥국 통화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대규모 양적 완화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각국의 경쟁적인 기준금리 인하로 전반적인 채권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례 없는 위험자산 선호 현상에 자산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못 견디는 연기금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8700억달러(약 96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 노르웨이글로벌정부연기금은 이달 들어 처음으로 나이지리아와 가나 통화에 투자했다. 신흥국 자산을 매입하면서 동시에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투자 비중을 2006년 이후 최대로 늘렸다. 투자한 회사채 중 신용등급이 BBB급 이하인 비중이 작년 3분기 말만 해도 7.5%였지만 올해는 8%를 웃돌고 있다.
유럽 최대 보험회사 알리안츠는 최근 국채 대신 모기지담보증권(MBS) 매입과 사회간접자본(SOC) 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JP모간애셋매니지먼트 역시 지난달 이후 투기등급 회사채 매입을 대폭 늘렸다.
이언 스틸리 JP모간애셋매니지먼트 운용역은 “투기등급 회사채 금리가 많이 떨어졌지만 마이너스 금리의 국채 투자보다는 낫다”며 “당분간 투기등급 회사채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ECB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이달부터 유로존 국채 매입을 본격화하면서 유로존 국채의 3분의 1이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연 5%를 웃돌던 이탈리아 국채도 연 1%대 초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포르투갈 국채 금리 역시 미 국채 금리와 비슷해졌다. 이 틈을 타 신용등급이 낮은 미국 기업은 유럽 채권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기업이 발행한 유로화 표시 투기등급 회사채만 32억8000만유로(약 3조959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최대다.
○“투자 열기, 우려할 만한 수준”
금리가 마이너스 또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장기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조금이라도 금리가 더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했던 국가들도 장기채 발행에 성공하고 있다. 2013년 투기등급을 받았던 슬로베니아는 최근 사상 처음 20년 만기 국채를 발행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코스타리카 역시 30년 만기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산 거품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채 시장과 회사채 시장에 불고 있는 투자 열기가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며 “거품이 붕괴돼야만 심각성을 깨달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중앙은행(Fed) 내 매파로 분류되는 제임스 블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는 이날 “미국이 ‘제로 금리’를 계속 유지할 경우 자산 거품이 확산 돼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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