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가 맥쿼리IB를 치켜세웠나

입력 2015-04-01 20:53   수정 2015-04-02 04:13

정영효 증권부 기자 hugh@hankyung.com


[ 정영효 기자 ] “최고경영진까지 설득해 맥쿼리를 자문사로 쓰기로 했는데…. 최고라는 부동산 중개소를 골라 집을 계약하기로 한 날 중개인이 사라져 버린 꼴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에 만난 한 기업체 전략담당 임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호주 금융회사인 맥쿼리그룹이 기업금융(IB) 부문 인력을 대거 내보내기로 결정한 날이다. 증권사 IB 부문은 기업 인수합병(M&A)과 주식조달시장(ECM) 거래를 주선하고 자문한다. 기업을 찾아다니며 ‘좋은 매물이 나왔으니 한 번 들여다보시라’는 식의 알선을 통해 거래를 성사시키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버는 사업이다.

곧 사업부를 대폭 축소할 증권사가 계속 영업할 것처럼 고객을 속여 왔다는 게 이 임원의 불만이다. 호주 본사가 갑작스레 결정한 일을 일개 현지법인이 어떡하느냐고 두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 대표와 임원을 한꺼번에 영입하며 IB를 대폭 강화하겠다던 게 불과 5개월 전이다. 맥쿼리의 고객 회사들로서는 헷갈리기 충분했다.

맥쿼리가 아니라도 한국에 IB는 많으니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이 이 기업은 재무구조를 개선할 마지막 기회를, 새 성장동력을 가장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도 모를 일이다.

맥쿼리의 갑작스런 의사결정이 눈총을 받는 건 일부 외국계 IB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부 중소형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국 IB시장에서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를 반복했다. M&A 거래가 늘어서 돈벌이가 된다 싶으면 ‘선진 금융기법 전수와 글로벌 네트워크 공유’를 외치며 들어왔다가 업황이 꺾이면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그들에겐 합리적인 의사결정이었을지 모르지만 당하는 한국 기업들과 한국 IB시장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맥쿼리의 경우엔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한국 IB의 롤모델’로 치켜세웠던 금융회사여서 아쉬움이 더 크다.

맥쿼리는 “남아있는 인프라 및 부동산 자문 부문이 기존 IB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기업 임원의 한숨 소리가 더욱 커졌다. “부동산 거래와 기업 M&A가 같나요. 그럼 수구 선수도 월드컵에서 뛸 수 있겠네요.”

정영효 증권부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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