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화장실 휴지걸이도 만드는 日대기업

입력 2015-04-07 20:44  

노경목 도쿄/지식사회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페이퍼 홀더, 블랙, 2만1500엔.’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신바시 인근의 파나소닉 제품 전시관에는 이 같은 설명이 붙은 화장실 휴지걸이가 전시돼 있었다. 무광택 색상과 그 위에 찍힌 파나소닉 로고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휴지걸이 하나의 가격은 원화로 환산하면 20만원 정도. 3개 층에 걸친 대규모 제품 전시관에는 기대했던 파나소닉의 최신형 전자제품 대신 변기와 욕조, 바닥재, 주방가구, 각종 가정용 출입문 등이 전시돼 있었다. “전자제품회사 전시관에 왜 이런 것들만 있느냐”는 질문에 매장 안내원은 “파나소닉의 인테리어 브랜드인 ‘파나소닉 리빙’ 전시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국으로 치면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주방가구회사인 한샘이나 가정용 바닥재를 만드는 동화마루와 시장을 다투고 있는 것이다. 당장 대기업이 화장실 휴지걸이까지 만들며 중견·중소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시관을 안내하는 파나소닉 관계자는 “대기업이 이런 것까지 만들면 일본 국민들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묻는 기자를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업종을 하는 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전자회사 특유의 기술력을 적용해 만든 기포가 생성되는 욕조, 물과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상 절약할 수 있는 샤워기와 전등 등이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일본 대기업들은 한국이라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업을 하는 사례가 많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 종합화학회사 스미토모화학은 1910년대부터 지금까지 비료를 생산하고 있고, 대형 종합상사 미쓰이물산은 홋카이도에서 기능성 양파를 직접 재배해 대형마트에 납품하고 있다. GS칼텍스가 비료시장에 진출하거나 삼성물산이 농작물 생산에 나선다고 발표했을 경우의 ‘후폭풍’을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덕분에 일본 소비자들은 20만원짜리 휴지걸이에서 혈당을 낮춰주는 성분이 5배 많이 함유된 양파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한국의 기업에 대한 여러 가지 족쇄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노경목 도쿄/지식사회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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