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한 교실. 13~14세 남녀 학생 25명이 성관계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다. 주제가 ‘자위’로 넘어가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짝꿍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연신 킥킥거리는 녀석도 있다. 젊은 강사는 개의치 않고 말한다. “웃어도 괜찮아. 이런 이야기가 조금은 당황스럽겠지만 제대로 아는 게 더 중요해.”
1967년 세계 최초로 포르노를 합법화할 정도로 성에 개방적인 덴마크에서도 학교 성교육 현장은 아직 쑥스러운 모습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남학생 99%와 여학생 86%가 16세 전에 이미 포르노를 접한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그렇다. 아동 성교육을 처음으로 의무화한 스웨덴에서는 4세 때부터 단계적으로 남녀 신체의 차이와 성기 구조, 자위행위, 피임법 등을 가르친다. 중학생이 되면 콘돔을 무료로 나눠준다.
독일은 더 사실적이다. 포르노에 버금가는 영상 교육은 물론이고 산부인과와 비뇨기과 의사들이 학교를 방문해 교육한다. 성폭력과 성희롱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미국에서는 인형을 활용한 프로그램까지 있다. 영국 하원도 5세 아이에게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실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청소년 3명 중 2명이 교 ?밖에서 성 정보를 얻고 있다니 그럴 만하다.
최근 들어서는 성교육 교재를 전면 개정하고 있다. ‘어떻게 임신을 피하나’에서 ‘어떻게 임신하나’로 발상을 뒤집는 것이다. 피임에서 임신으로 초점을 바꾼 이유는 심각한 저출산·저성장이다. 경제 위기와 낮은 고용률 때문에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은 1.6명 이하로 떨어졌다. 출산장려금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출산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한 여행사는 ‘덴마크를 위해 사랑을 나눠라!’라는 광고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다. 파리로 여행 간 연인이 섹시한 속옷 차림으로 호텔방에서 키스하는 장면과 ‘덴마크 사람들은 휴가 때 46% 더 많이 성관계를 갖는다. 10명 중 1명이 여행 중에 잉태됐다’는 카피를 곁들인 것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게 출산율을 높이는 애국 행위’라는 문구도 들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성교육은 구석기시대 식이다. 하도 성을 금기시한 탓일까. 유네스코 조기 성교육 지침서는 ‘5세 아이에게도 제 성기를 만지며 즐기는 게 자위행위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권하는데, 한국 부모들의 표정은 아직도 묘하기만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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