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부터 내라"는 징세편의주의에 제동 건 법원

입력 2015-04-14 20:32  

서울고등법원이 세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기업이 납부시기 연기를 신청한 데 대해 처음으로 세금부과 집행정지 판결을 내렸다는 한경 보도(▶4월14일자 A9면 참조)다. 2년간 적자를 낸 동부하이텍이 영업권에 부과된 세금 778억원을 낼 경우 회사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고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법원은 영업권 과세도 부정적으로 봤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기업 수십 곳이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국세청은 선고 이후 추가 체납처분(가산세 부과)을 정지한다는 뜻이지 세금부과를 취소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또 1998년에도 상속세 부과처분 집행정지를 결정한 원심을 대법원이 기각한 적이 있어 최종심을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리한 과세에 대해서도 일단은 세금을 납부한 다음에 소송을 하더라도 하라는 징세편의적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

세금에 관한 한 국가가 갑(甲)으로 군림하는 세법의 독소조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연말정산에서 회사 실수로 소득신고가 누락돼도 근로자 책임으로 간주해 불성실신고 가산세를 물린다. 그렇다고 미리 많이 뗀 세금에 이자를 주는 것도 아니다. 중간예납은 세금을 선납하는 것임에도 자동차세처럼 할인(10%)은커녕, 납부기한을 못 지키면 오히려 가산세를 매긴다. 더구나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여서 위헌 시비마저 일고 있다. 납세자에 물리는 환급불성실 가산세는 연 10.95%인데 국가가 토해내는 국세환급 가산금은 연 2.9%로 3배 이상 차이가 나 형평에 문제가 있다는 지난해 국회 입법조사처의 지적도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도 오십보백보다. 지난 10년간 과징금 처분 중 87%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을 정도다. 지난해 과징금 소송 중 공정위 패소율이 20%를 웃돌고 과징금 취소율은 40%에 이를 정도다. 국가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갑질’한다는 비판까지 듣는 게 정상일 수 없다. 관료들이 편해질수록 국민은 억울한 일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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