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다시 생각해볼 주가차익 과세

입력 2015-04-14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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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세수 채울 목적이라면
투자 준비하는 법인 증세보다
배당·주가 차익 과세를 검토해야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 약 470조원이 쌓인 국민연금 기금이 숨겨진 채무 때문에 순자산으로 보면 ‘빈껍데기’라는 것이 알려졌다고 말이다. 노후에 국민연금에 목을 매고 있는 은퇴자는 물론이고 연금을 붓고 있는 청장년층까지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국민연금이 그런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잘 모르는 사이에 다른 곳에서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인이 쌓아놓은 또 하나의 ‘목돈’인 외환보유액이 그것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후 외환보유액을 쌓기 시작해서 지금은 3600억달러를 넘었다. 우리 돈으로 400조원 정도 된다.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위기 후 한국이 투자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해서 지속적으로 경상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인의 입장에서 외환보유액은 순자산이어야 한다. 특히 과거 한국이 경상 적자를 냈을 때 그것이 바로 한국의 순외채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상 흑자로 외환보유액을 쌓았지만, 그동안 순대외자산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외환위기 후 경상 흑자는 약 4700억달러인데, 한국의 순대외자산은 1500여억달러 느는 데 그쳤다. 그 차이를 2014년 가격으로 계산해 보면 약 3700억달러로 외환보유액과 비슷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한국의 해외 투자자산과 외국인의 한국 투자자산의 가격 오름폭이 달랐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 자산이 무더기로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그 후 한국 자산 가격이 오르고 환율도 떨어지자 외국인이 대거 차익을 챙겼다. 나아가 위기 후 한국이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했는데, 그 결과 한국은 값이 오르지 않은 외환보유액을 쌓고 있는 사이 외국인은 주식시장, 부동산시장에서 큰 차익을 거뒀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대차관계를 수반하지는 않지만,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자산은 한국 입장에서는 어김없이 채무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만큼 채무가 늘었다면 외환보유액은 순자산이 없는 빈껍데기인 셈이다. 이것을 가계에 비유하면 이렇다. 아내는 남편이 갖다 주는 돈으로 꼬박꼬박 저축해 은행 예금을 늘렸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남편이 사놓은 증권 가액이 가격 하락으로 은행 예금 가액만큼 줄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은행 예금이 늘었으니 집안 자산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빈껍데기인 것은 국민연금이 빈껍데기인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다. 국민연금의 재무상태는 일부 해외 자산을 제외하면 현세대와 다음 세대 간의 분배 문제일 뿐이다. 반면 외환보유액이 빈껍데기인 것은 그 전액이 국민소득 이 감소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에 대해 지금 와서 외환위기의 결과를 되돌릴 수 없고, 세계화는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넘어갈 일은 아니다. 당장 정책 문제가 걸려 있다. 그동안 외국인이 400조원 가까이 차익을 거뒀고, 그중에는 실현해서 가지고 나간 것도 있을 텐데 세금은 얼마나 냈는가. 이것은 과세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인·내국인을 불문하고 투자 차익, 특히 주가 차익에 대한 과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특히 법인세와 비교해서 그렇다. 모자라는 세수를 채우기 위해 필요하다면 법인세를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인으로서의 기업은 소득 분배의 주체가 아니고, 그 주체는 배당이나 차익을 얻는 주주다. 거기에다 기업의 유보금은 언젠가 투자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배당이나 주가 차익은 투자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다. 외국인의 몫은 결국 가지고 나가기 위한 것이다.

지금 한국이 투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법인세보다는 주가 차익에 대한 과세를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주가 차익에 대한 과세는 주식시장이 활황일 때 도입하는 것이 좋다. 지금처럼 전 세계에 유동성이 풀려 주가가 오르는 상황이 그런 시점일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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